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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전문가칼럼] 중앙아시아에서 돌하르방을 만나다

  • 작성자 송금영
  • 등록일 2020.07.10

중앙아시아에서 돌하르방을 만나다

송 금 영(전 주카자흐스탄 공사)

카자흐스탄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오스케멘(Oskemen)에 가면 제주도의 돌하르방(할아버지)과 유사한 석인상들을 볼 수가 있다. 이들 석인상들은 수천년 전 알타이 지역에서 기원한 투르크계(Turkic) 유목민인 스키타이족(Scythian)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이후 훈족, 돌궐족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석인상을 지칭하는 ‘balbal’이라는 단어는 고대 투르크어로 할아버지혹은 조상을 의미하며, 석인상은 투르크 유목민들의 활동 무대인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남부, 몽골에서 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석인상은 권력자의 무덤이나 신들을 모신 신성한 장소에서 발견되며 경계의 표시, 수호신 등을 상징하였다. 6세기에서 13세기 동안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돌궐인, 카자흐인, 키르키즈인 등 투르크 부족들은 장례 풍습으로 무덤의 위치를 표시하고 무덤의 주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주변에 석인상을 본격적으로 세웠다. 고인이 생전에 죽인 적들의 숫자만큼 석인상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이들 석인상들은 무덤을 보호하며 이승에서 고인을 지켜주는 수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석인상에는 살해당한 부족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등 고인의 용맹성을 상징하였다.

다른 해석으로는 석인상은 고대 이집트 왕들의 위엄을 상징하는 오베리스크(Obelisk)와 같이 고인을 기념하는 석비(石碑)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고인의 영혼이 석인상이 되었으며 중앙아시아에 유행한 조상 숭배라는 민간신앙과 연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민간신앙이 발전하여 후세에 석인상은 재앙을 물리치고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신격화 되었고 주민들은 신성한 장소에 석인상을 세우고 제물을 받쳤다.

중앙아시아 석인상들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대부분 얼굴에 콧수염이 있는 남성 석상이다. 고대 투르크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턱수염 보다는 콧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그리고 석인상들은 손에 잔이나 악기, 새들을 들고 있다. 오른손이나 양손으로 잔을 들고 있으며 왼손으로 잔을 들지 않았다. 잔은 신에게 받치는 성수를 담는 그릇을 의미한다고 한다. 말과 양을 방목하면서 대초원을 유랑하는 유목민들에게 물은 곧 생명이었으며, 어디든지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할 수 있도록 신에게 기원하였다.

석상들은 크기는 50cm에서 2m까지 다양하며, 서 있거나 앉아서 다리를 양반자세로 하고 있다. 석인상의 얼굴은 정교하지 않고 누구나 조각할 수 있는 순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투르크인들은 다신교 종교로서 텡그리(영원한 하늘)라는 신을 믿었고 태양을 숭배하였다. 매일 동쪽에서 뜨는 태양으로 하루가 탄생한다고 믿었으며 석인상의 얼굴이 동쪽으로 향하게 하였다. 석인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남쪽, 왼쪽은 북쪽을 의미하며 석인상은 이곳을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나침판 역할도 하였다.

석인상은 남성과 여성이 있으며 남성 석인상이 약 90%이고 여성은 10% 정도라고 한다. 특히 키르키즈스탄에서 다산과 풍요의 신으로 숭상 받는 우메이(Umay)라고 불리는 여성상은 달 모양의 둥근 얼굴에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우메이 석상은 머리에 삼각형 모양의 관을 쓰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키르키즈 주민들은 우메이 돌상을 손으로 만지면서 자식들의 출생과 가축들의 다산을 기원한다.

8세기 이슬람이 중앙아시아에 도입되어 확산되자 이 같은 석인상 건립의 풍습도 13세기경에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이슬람은 인간 모습의 우상 숭배를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아 사람들은 이슬람을 수용하면서도 수천 년간 내려온 민간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석인상을 숭배하고 있다. 이슬람도 수세기간 내려오면서 무슬림 성인들을 모시는 성묘 조성을 허락하였다.

한편 석인상은 인접한 몽골, 만주, 한반도까지 확산되었으며. 한국에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장승으로 등장하였다. 한국의 장승은 제주도의 돌하르방 이나 천하대장군처럼 나무로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워졌다.

돌하르방은 중앙아시아의 석인상과 차이가 있다. 우선 돌하르방은 여성이 없으며 남성인 할아버지 상으로서 벙거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양손을 배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중앙아시아 석인상은 모자가 없으며, 손에 잔이나 악기를 들고 있으며 남성상과 여성상이 있다. 제주도에 남아 있는 돌하르방은 대부분 키가 크며 양손이 유달리 크게 조각되어 있으며 손의 위치에 주안점을 두었다.

돌하르방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른다. 아마도 수천년 동안 한민족(韓民族)이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역에서 몽골과 만주를 거쳐 살기 좋은 한반도로 계속 이주하면서 돌하르방도 도입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돌하르방은 한반도와 중앙아시아를 이어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