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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중앙아시아 정치 현상: 장기집권 vs 시민혁명

  • 작성자 고재남
  • 등록일 2020.10.23

[전문가 칼럼]


중앙아시아 정치 현상: 장기집권 vs 시민혁명


고 재 남 (유라시아정책연구원 원장)


104일과 11일에 각각 치러진 키르기스스탄 총선과 타지키스탄 대선은 중앙아시아 정치의 두 얼굴, 즉 장기집권과 시민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라는 상이한 정치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선관위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요구에 굴복해 총선결과를 무효화하면서 116일 재선거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총리, 의회의장, 검찰총장 등 주요 정부 인사들이 줄줄이 사퇴하였고, 대통령 또한 시위대의 압력에 의해 조기 사임하였다. 한편 타지키스탄에서는 1994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해온 라흐몬이 대선에서 90% 이상의 지지를 받아 압승해 향후 7년 더 대통령직을 수행할 예정이고, 이는 중앙아 5개국 대통령 중 가장 장기간 재임할 예정이다.

독립 후 수년 동안 중앙아시아 5개국들이 탈공산화를 위한 정치체제 전환을 추진하면서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해 낙관론이 상당하였다. 서방 국가들 및 국제기구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사회 또는 서방세계의 기대와는 달리 Freedom House2020년 보고서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을 권위주의가 공고화된 국가로 분류하면서, 키르기스스탄을 부분적으로 자유로운’(Partly Free), 그리고 나머지 4개국을 자유롭지 못한’(Not Free) 국가들로 분류하고 있다. 비록 키르기스스탄에서 2005년부터 시민혁명이 발생해 장기집권을 종식시켰지만,

지난 28년 간 중앙아시아 정치에서 지배적인 정치현상은 권위주의 장기집권 현상이다. 물론 우즈베키스탄에서 카리모프(Islam Karimov) 대통령의 급사(2016. 9)와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ev) 대통령의 조기 사임(2019. 3)으로 이들 국가에서 대통령의 장기집권 현상이 끝났지만, 투르크메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의 대통령은 장기집권 속에서 부자세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장기집권 정치현상은 여타 지역의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통령 재임 기간(20209월 말 현재)


국가

대통령 재임기간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1990. 4-2019. 3; 29), 토카예프(2019. 3-현재; 16개월)

우즈베키스탄

카리모프(1990. 3-2016. 9; 266개월), 미르지요예프(2016. 9-현재; 4)

키르기스스탄

아카예프(1990. 10-2005. 4; 146개월), 바키예프(2005. 7-2010. 4; 49개월), 오툰바예바(2010. 7-2011. 12; 16개월), 아탐바예프(2011. 12-2017. 11; 6), 제엔베코프(2017. 11-현재; 210개월)

타지키스탄

마하모프(1990. 8-1991. 8; 1), 아슬로노프(1991. 8-1991. 9; 1개월), 나비예프(1991. 9-1992. 9; 1), 라흐몬(1994. 11-현재; 2510개월)

투르크메니스탄

니야조프(1990. 11-2006. 12; 161개월), 베르디무하메도프(2007. 2-현재; 137개월)


그렇다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체제로 발전되었는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독립후 3권 분립에 입각한 헌법을 채택했으나,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였고, 의회는 집권당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형태의 1.5 정당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헌법 개정을 통해 당시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연임규정을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권위주의적 장기집권 체제의 구축에는 정치적, 경제적, 대외적 요인들이 기여하였다. 정치적 요인으로, 소련정치의 유산, 시민사회의 미발달과 정치적 대안세력의 부재를 지적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여타 소연방 구성국들에서와 같이 민족주의가 분출되긴 했지만 공산당과 민족주의 세력 간의 갈등구도가 형성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독립 전에 정권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 4개국에서는 공산당 최고위층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공산당은 명칭만 바꾼체 헤게모니정당의 역할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차별적 독립과정은 중앙아시아에서 정치 엘리트 및 관료들의 직장과 지위를 보장함과 동시에 소련식 권위주의적 통치체제 및 행정관리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소련의 공식제도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지만 그것을 보완하여 개벌적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지연·혈연·인맥을 기반으로한 네트워크, 특히 후견-피후견 관계는 필수적이었다. 독립 후에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러한 후견-피후견 네트워크는 집권세력의 공고화와 권력연장의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였다. 또한 중앙아시아 5개국의 경우, 시민사회의 결성과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고, 정치적 대안세력의 결성 및 발전이 부재하였다.

경제적 요인의 경우,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초·중반 체제이행 과정에서 경기불황과 회복의 역동성을 보여주었으나. 이 후 괄목할만한 경제성과 및 경제적 안정성은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 동인으로 작용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중앙아시아 5개국 간 사유화와 민영화의 수준 차이가 존재하며 그 설명력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권위주의 정부들이 소련시대에 깊이 뿌리내린 후견-피후견관계를 이용하여 사유화, 민영화 과정에서 생겨난 막대한 부와 이권을 선별적으로 배분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지지 및 정권의 연속성을 확보하였다. 한편 풍부한 지하자원의 수출을 통해 많은 외화를 획득하였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통령은 이를 활용해 정치 엘리트들은 물론 국민들의 지지기반을 유지 및 강화하였다.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중앙아시아 전통, 즉 가부장적 전통, 인민들의 권위에 대한 순응성, 권위 및 연장자에 대한 존경, 취약한 민주적 기구 등이 중앙아시아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의 구축과 공고화에 기여했다. 또한 집단 구성원들의 유대와 결속을 일체화하는 기능을 지닌 전통적 씨족정치또한 민족적 충성감’, ‘씨족에 대한 동원과 지지의 메커니즘양상을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의 1인 지배체제를 공고화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소련시기 형성된 정치문화, 즉 권위주의 정치문화와 국민들의 정치생활에서의 소외 또는 무관심이 현 중앙아시아 국민들의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순응 또는 지지에 영향을 미쳤다.

대외적 요인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가 가능한 요인으로 서구와의 취약한 연계성을 지적할 수 있다. 연계성은 지리적 근접성 뿐만 아니라 서구의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문화에 대한 접근성 및 재정적·조직적 지원의 정도를 포함하는 개념인데, 중앙아시아의 경우, 키르기스스탄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비록 지리적으로 서구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체제이행 초기 급격한 개방정책을 통한 서구문화의 유입, NGO 활동에 대한 지원 및 협력·교류의 확대가 2005년 시민혁명을 가능케한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적 장기집권 체제 구축에는 러시아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 주도의 다양한 다자협력체에 참여하고 있으며, 양자 차원에서도 긴밀한 정치·경제·안보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의 대중앙아 정책에 순응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지지해 오고 있다.

중앙아시아 장기집권 권위주의 정치는 상기 국내외 요인들에 의해 구축, 지속되어 왔으나 향후 진로는 과거와는 다른 국내외 정세에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된 국내외 정세에 영향을 받아 중앙아시아 정치는 권위주의 2.0 시대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중앙아시아에서 권위주의 정치는 지속되겠지만 헌법에서 허용하는 중임 이상의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정치지도자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부자세습의 성공여부가 관심사항이지만, 이들 국가에서 부자세습이 이루어지더라도 중임 이상의 장기집권을 획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