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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앙아 경제협력에 대한 도발적 질문

  • 작성자 성원용
  • 등록일 2020.10.30

·중앙아 경제협력에 대한 도발적 질문


성원용(인천대학교)

중앙아시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누군가는 역내 지역통합(regional integration)과 외부의 이해당사국과의 협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이중전략의 실험 공간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EAEU, SREB, New Silk Road Initiative, TRACECA 등이 패권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는 유라시아 거대게임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21세기 실크로드가 관통하는 유라시아 교통물류의 핵심 공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익히 들어왔던 말들이고, 실제로 관찰되는 중앙아시아의 동학이 대체로 이러하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중앙아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실천할 방도를 찾는 것이 급할 뿐이다.


그래서 자문해본다. “과연 경제협력의 관점에서 중앙아시아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답이 쉽지 않다. 돌아보면 수교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중앙아시아에 대한 우리들의 사고는 전통적인 스테레오타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왜 우리의 사고는 진화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중앙아시아관에는 왜곡된 정보, 오해, 무지 등에서 비롯된 일종의 근거 없는 신화’(神話)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시장, 저렴한 노동력, 풍부한 자원 등등... 이렇게 된 데에는 무수한 원인이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국내에 유라시아와 관련된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체계가 경쟁시장수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내부적으로 단일화된 구태의연한 통념과 관성적인 사고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전통적으로 중앙아시아에는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또한 틀린 말이기도 하다. 사실 저임금을 거론하려면 임금 그 자체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노동생산성과 동시에 비교해야 한다. 즉 상대적인 개념이다. 주지하듯이 노동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면, 절대 임금 기준이 낮다고 할지라도 하등의 비교우위를 갖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은 무인 자동화 시스템이 최첨단을 달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가 아닌가?


다음 다수가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토지를 강조하며 거대한 농업개발 잠재력을 전망한다. 타당성이 높은 사업이다. 한 번이라도 중앙아시아 땅을 밟아본 사람들은 쉽게 동의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여기에 맹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그 토양에 미생물이 없어 살아있는 땅을 만들기 위해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중앙아시아에서 빨리빨리가 결코 미덕이 아니고, 오히려 조급하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중앙아시아는 에너지 광물자원의 보고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지금 세계는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시대로 급격하게 전환되고 있는데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당분간은 에너지 안보의 각축장으로서 주변 패권국과의 연계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 전략이 주효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중앙아시아 경제협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우즈베키스탄은 자동차조립 생산을 통해 제조업 육성의 희망을 키워왔고, 나름대로 외국인자본 유치를 통해 자동차산업 발전의 맹아적 기초를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즈베키스탄에서 자동차조립 생산은 장기적인 침체 상태에 빠져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즈베키스탄 노동자의 임금은 저임금을 받지만, 자동차의 품질을 혁신할 수 있는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조립부품을 주로 해외에 의존하기 때문에 물류비 등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 그리고 지금까지 거대한 판매시장의 역할을 했던 러시아 수출이 위축되면서 엄청난 곤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 원료, 노동력의 요소를 분리해서 멈춰있는 것으로 사고할 것이 아니라, 시간 함수에 따라 유동적이고 역동적으로 결합하는 요소들로 해석해야 한다. 한마디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순응적, 관성적 사고에서 벗어나 도발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과연 중앙아시아에서 제조업이 강력한 경쟁력을 갖는 추격형 발전전략이 가능하겠는가? 에너지 광물자원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부가가치 제조업 육성을 통해 산업 다각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되지만, “과연 지금’, ‘중앙아시아에서 그것이 가능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중앙아시아가 대양과 차단된 내륙국가의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과거부터 긴밀한 산업연관체계를 구축했던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면 가치사슬 구조에서 중앙아시아의 제조업 독립을 허용하겠는가? 이미 금융지원을 조건으로 초국경 인프라 투자 협력과 시장 진출을 맹렬하게 진행한 중국의 침투를 막아낼 수 있겠는가? 접경지역에 거대한 유휴노동력을 가진 제조업 강대국이 버티고 있는데, 과연 이곳에서 제조업이 대외경쟁력을 갖는 혁신이 가능하겠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한·중앙아 협력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한국형 산업화라는 성공모델을 전면에 내걸고, 마치 한강의 기적이 이곳에서도 재연될 것처럼 기대감을 불어넣으며 협력을 재촉해왔다. 그들이 물으면, “이것도 가능하고, 저것도 가능하다!” 식으로 무책임하게 호응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모방과 이식이 아니라, 각자가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그릇된 통념과 관성적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기회의 창이 새롭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