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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키르기스스탄에서 왜 자꾸 민중 혁명이 발생할까?

  • 작성자 윤성학
  • 등록일 2020.10.16

키르기스스탄에서 왜 자꾸 민중 혁명이 발생할까?



윤성학(고려대학교 러시아CIS연구소 교수)

키르기스스탄에는 지난 104일 총선(비례대표제)에서 7% 이하의 득표로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야권 연합세력이 5일 수도 비슈케크를 중심으로 대규모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였다. 120석이 걸린 총선에 참여한 16개 정당 중 제엔베코프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권여당과 친정부 성향 정당들이 90%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둔 반면 의회 진출 하한선인 7% 득표율을 넘긴 야당은 겨우 한 곳에 불과했다. 제도권 진입에 실패한 11개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선거가 조작됐다며 수도 비슈케크를 중심으로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위대는 경찰 방어벽을 무너뜨리고 비슈케크 시청과 방송국, 의회, 정부 청사를 차례로 점거했다. 총리는 사임했으며 일부 지자체장들은 해외 도피하려 월경하다 잡히기도 했다. 또한 국가보안위원회(KGB) 산하 교도소에 갇혀 있던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과 사파르 이사코프 전 총리, 잔토로 사티발디예프 전 총리 대리 등이 석방되었다. 키르기스스탄 중앙선관위원는 국가 비상사태 방지를 위해 총선 결과 무효화를 결정했다.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중앙선관위원회에 선거법 위반 사례를 철저히 조사하고 필요하면 선거 결과를 무효화 하겠다고 항복했다. 또한 야당 지도자들과 만나 '현 의회가 새 정부를 구성하고 재선거를 실시하자'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결국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사태 수습 이후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의 지지 기반인 남부에서의 지지는 굳건하다.

지금 키르기스스탄 정국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다. 교도소에서 풀려난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이 석방 나흘 만에 시위 선동 혐의로 다시 체포했다.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임시국회를 열고 민족주의 성향 정치인인 사디르 자파로프 애국자당 대표를 새 총리로 선출했는데, 자파로프 또한 사태 수습보다는 정국 주도를 노리고 있다. 자파로프, 아탐바예프, 제엔베코프가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202010월 발생한 혁명은 키르기스스탄 역사에서 세 번째이다. 2005, 2010년에 이어 10년 만에 민중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세 번의 정권 교체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동보다는 집권 세력의 교체만 일어났기 때문이다.

집권 세력의 교체도 이념을 중심으로 일어난 게 아니다. 초대 대통령 아카예프과 이후 바키예프, 아탐바예프, 제옌베코프로 바뀌는 데 공식이 있다. 아카예프는 수도 비쉬케크를 중심으로 한 북부 출신이고 바키예프는 이 나라의 두 번째 큰 도시인 오쉬의 남부 출신이다. 바키예프 또한 2010년 총선에서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아탐바예프에 의해 혁명으로 축출되었다.

아탐바예프에서 현 대통령인 제옌베코프의 권력 교체는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야합에 가까웠다. 아탐바예프는 남부 출신 제옌베코프를 밀어주는 대신 상당한 지분을 보장받았지만 대통령이 된 제옌베코프는 입을 닦고 아탐바예프를 부패 혐의로 교도소에 쳐 넣었다.

키르기스스탄의 권력 교체의 패턴은 북부-gt;남부-gt;북부-gt;남부로 진행되었다. 이번엔 다시 북부 차례이다. 혁명의 패턴 또한 부정 선거-gt;민중 혁명-gt; 재선거라는 공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10월 혁명 또한 이제 3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왜 이런 빈번한 폭력 혁명이 일어날까? 그 원인은 가난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하지만 자원도 없고 농토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내륙 국가의 특징상 물류도 소외되고 외국인투자도 거의 없다. 2019년 기준 1인당 GDP1,293달러로 전 세계 154위라는 비참한 실정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돈 버는 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러시아나 두바이로 나가 외국인노동자가 되는 길, 두 번째로 이 나라 GDP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쿰토르 광산에서 일하는 것, 세 번째는 정치 비즈니스라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외국에 나가기도 쉽지 않다. 쿰토르 광산도 갈수록 금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으며 심지어 외국인투자업체와 법적 소송 중이다. 그래서 제일 하기 쉬운 게 정치를 통해 먹고 사는 일이다.

지난 두 번의 혁명의 결과를 놓고 보면 남부나 북부나 정권을 잡으면 장관부터 수위까지 전부 자기 지역 주민으로 교체한다. 그 이전의 모든 계약은 무효화되고 새로 체결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한다. 무엇보다 정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 현 대통령 제옌베코프와 전 대통령 아탐바예프는 각별한 친구 사이였다. 아탐바예프가 대통령 할 때 제옌베코프는 총리로 각별히 모셨다. 201710월 대선에서 제옌베코프는 아탐바예프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옌베코프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아탐바예프의 정치 노선을 승계할 것이며 영원한 우정을 간직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제옌베코프는 대통령 당선 이후 아탐바예프에게 키르기스스탄 최고 영예인 키르기즈 공화국 영웅이라는 훈장을 수여하였다. 그렇지만 아탐바예프는 선거 지지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하자 제옌베코프는 부패 혐의로 정적 죽이기에 나서 교도소에 쳐놓은 것이다.

유목적 전통도 키르기스스탄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어렵게 만든다. 몽골은 포함한 유목 사회는 세습과 장자 상속을 부정한다. 그들은 쿠릴타이라는 일종의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가장 힘 있는 자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안전과 빵을 보장받는다. 지도자가 그것을 보장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 결과의 승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정치 혼란이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좋은 제도보다는 절대적 빈곤에서 먼저 탈출하여야 한다. 최근 키르기스스탄의 지정학적 위치가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 주도 유라시아경제연합의 접점 지대가 키르기스스탄이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물류, 관광, 광산 개발 등을 통해 1인당 국민소득을 두 배로 올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