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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전문가칼럼] 미국의 대 중앙아시아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 작성자 현승수
  • 등록일 2020.08.28

미국의 대 중앙아시아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현승수(통일연구원)


최근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2001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 위한 군사 거점과 병참 기지로서 중앙아시아를 활용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동의가 필요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하면서 중앙아시아에 미군과 나토군이 주둔하도록 허락했다. 그 결과, 미국은 우즈베키스탄의 카르시 카나바드 기지와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기지에 거점을 확보하고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문제는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민족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의 반미 감정이었다. 그들은 미국에 자국 영토를 빌려주면서 기대했던 경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데다가,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유, 법치, 인권 같은 서구식 가치를 요구해 왔고, 때마침 옛 소련 권에서 이른바 색깔 혁명으로 불린 시민 봉기가 확산하자 미국의 배후를 의심하며 미군 기지의 철수를 요구했다. 러시아와 중국 역시 SCO(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요구에 힘을 실어주었다. 결국, 미국은 2014년까지 중앙아 역내 두 개의 기지를 완전 철수시키고 오바마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완전 철군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탈레반 세력이 재차 힘을 얻으면서 군사적 위세를 떨치자 미군의 철군은 연기됐지만, 기지가 없는 중앙아시아는 미국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나마 201511, 중앙아시아 5국 외교부와 미 국무부 사이에 ‘C5+1’로 명명된 비정례적 포럼이 출범한 것은 미국이 중앙아시아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면서 이 지역에서 전략적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20202,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앙아시아의 양대 지역 강국이라 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다. 그가 중앙아시아에서 보인 행동과 발언은 명백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중국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벌이고 있는 경제 활동 등이 역내 국가들의 주권과 이익을 해치고 있다면서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난했으며, 중국을 대신해 미국이 이들 국가와 좋은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대일로의 위험성도 경고했다. 또 카자흐스탄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을 거론하면서 카자흐스탄 정부가 중국 내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의 망명을 받아주도록 촉구했다. 그는 실제로 중국 당국에 구금되어 있는 카자흐족 인사의 친지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와 대 중국 견제의 고삐를 당긴 셈이다. 중국 외교부는 이미 폼페이오의 중앙아 방문 계획이 발표된 직후 논평을 통해, 미국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중국 사이를 훼방 놓고 있으며 신장 위구르 문제로 불필요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려 한다고 비난했다. 중국 측은 신장 위구르 문제의 본질은 이슬람 과격주의와 테러리즘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며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어 중국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 패권 경쟁이 전방위적으로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이제 중앙아시아가 미중 경쟁의 또 다른 무대로 등장하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폼페이오의 중앙아시아 방문 직후인 202025일에는 미 국무부가 작성한 대 중앙아시아 전략 보고서가 공개됐다. 미국의 대 중앙아시아 전략 2019-2025: 주권과 경제 번영 증진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미국과 국제 안보를 위해 중앙아시아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미국과 중앙아 역내 5개 국가의 상호 전방위적인 협력 증진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미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특정 국가에 의존 혹은 종속되지 않고 자기 주권을 담보하면서 법치와 인권 등 보편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협력할 것임도 명시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6개의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각자 그리고 하나의 지역으로서 주권과 독립을 담보 및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중앙아시아에서 테러리즘의 위협을 감소시킨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위한 지원을 확대한다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연계성을 증대시킨다 법치와 인권 존중을 증진시킨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촉진하고 역내 발전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 보고서에 담긴 얼개와 추진 전략은 9.11 이전 혹은 9.11 당시에 보았던 기존 전략 보고서의 그것과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중앙아시아를 아프가니스탄 안보의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안보를 위한 이익 지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며, 과거 이 지역에서 미국이 경쟁자로 러시아를 상정했었다면 이제는 중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또 하나, 최근 미국의 중앙아시아 협력 강화 움직임과 관련해서 우즈베키스탄의 역할과 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국이 위에 언급한 전략 목표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게 위해서는 역내 국가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지가 필수불가결하며, 특히 미군이 철수한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건설적인 역할이 필요한데, 우즈베키스탄이 최적의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사후 집권한 샤브캇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개방적인 행보와 개혁 성향이 트럼프 행정부의 호감을 샀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의 협력이 다방면에서 눈에 띠게 진전되고 있고, 20191월에는 미 하원 내에 우즈베키스탄 이익 단체가 발족했을 정도다. 미 의회 안에 자국의 입장을 대변할 이익 단체를 가진 나라는 중앙아시아에서 우즈베키스탄이 처음이다. 20185월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두 정상 사이에서 거론됐던 양국 군사 협력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우즈베키스탄은 미국을 대신해 아프가니스탄 안정화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 오고 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20183월에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아프가니스탄 평화 컨퍼런스를 개최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비롯, 미국과 독일, 중국, 파키스탄, 러시아 등 20개국 대표단이 참가한 가운데 아프간 내전 종식을 위한 의견 교환의 장을 마련한 바 있고, 같은 해 8월에는 탈레반 대표단을 초청해 평화 협상 의사를 타진하는가 하면, 미국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참가하는 3자 회담의 정례화에도 적극적인 모양새다. 또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중앙아 역내 국가들의 통합을 추진하는 데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미국의 신뢰가 날로 높아지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두 나라 관계가 늘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 주도의 지역 경제 통합 기구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 참가할 경우 WTO 가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이를 막고자 했지만, 우즈베키스탄 의회 상원은 올해 5월 옵서버 자격으로 EaEU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압도적으로 찬성표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또 미국이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권 국가들에 대해 시행하고 있는 무역제한 규정인 잭슨베닉 무역법 수정안의 철폐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양국 교역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와 미국, 중국 사이에서 보여 온 능수능란한 줄타기 외교를 재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확대일로에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 혹은 감소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2000년대 후반 미국이 이 지역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후 10여 년 동안, 중국은 일대일로를 앞세워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압도적으로 키워왔고, 이미 중국 없는 중앙아시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이 중앙아 역내 국가들의 안정과 발전을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하려 할 경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9.11 이후 미국이 이 지역에 진출했을 때 각국 정부에 약속했던 경제 지원 대신에 민주화와 인권을 들고 나옴으로써 오히려 국가 이미지 손상과 영향력 상실을 경험했던 사례가 되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례로 이번에 폼페이오 장관이 중앙아시아를 방문할 당시 중국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두 나라의 지지와 협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향후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관여가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어떤 모습일지, 또 전통적으로 이 지역을 이해 지대로 인식해 온 러시아가 미중 경쟁과 갈등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국제 청중의 이목이 집중되겠지만, 중앙아시아 역내 국가들이 21세기 새로운 지정학 게임에서 어떤 생존 전략을 구사할지가 필자는 더 궁금하다. 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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