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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전문가 칼럼] 한국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왔는가?

  • 작성자 윤성학
  • 등록일 2020.06.05

한국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왔는가?

윤성학(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교수)

어떤 민족이나 정체성은 중요하다. 조상과 전통을 숭상하는 한국인에게 정체성이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한국인 게놈(genome·유전체) 분석 결과에 의하자면, 한국인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인은 수만 년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여러 차례 올라온 사람들과 그 자손들의 복잡한 혼혈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일어난 가장 최근의 혼혈화는 석기시대에 널리 퍼진 선남방계(북아시아 지역) 인족과 4천년 전 청동기·철기 시대에 급격히 팽창한 후남방계(남중국 지역) 인족이 37 정도 비율로 혼합되면서 지리적으로 확산했다. 이런 결과는 생정보학(bioinformatics) 기술을 이용, 현대인과 고대인의 게놈 273개를 슈퍼컴퓨터로 분석해 도출했다.

이 논문에 대한 과학적 비판은 같은 생명공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몇 가지 오류가 있다. 무엇보다 울산과학기술원은 지역과 민족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다양한 민족들이 수천 년에 걸쳐 이동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의 경우 주류 민족은 비엣족(Việt, )으로, 월족의 본래 원주지는 중국 남부이다. 이들은 양쯔강 이남에 살다가 기원전 약 1천년을 전후해 황하 근방에 살던 한족에게 계속 밀리면서 처음에는 하노이 등 베트남 북부로 이주했다. 태국인의 대다수를 이루는 타이족도 똑같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베트남과 태국의 원래 민족은 중국계이며 이들이 수천 년 동안 현지 민족과 흡수하면서 현재의 비엣족과 타이족이 된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경우, 이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처음 출현한 민족은 스키타이(Scythians)였다. 고대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스키타이는 페르시아계 유목민족으로 현재의 크림반도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살았다. 이들은 그리스와 접촉하여 흡수한 농경문화를 유라시아에 갖고 왔다. 그 대표적인 흔적이 스키타이 문양이다. 스키타이 문화는 동진하여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스키타이가 동진해서 유라시아 북부에서 흉노족으로 변신하면서 중앙아시아 빈 공간을 메운 사람들은 지금의 타지크족의 조상인 소그드인(Sogdia)들이다. 이란계인 소그드족은 알렉산드로 대왕이 정복한 마라칸트(지금의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실크로드의 상인으로 활약했다. 소그드족은 활발한 무역을 통해 중국 당나라에 서역 문화와 그들이 믿었던 조로아스터교를 전파했다.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벽화에 나타나는 고구려 사신의 모습은 소그드--한반도로 이어진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3세기에는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중앙아시아에 들어섰으며, 14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이 유라시아를 지배했다.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는 투르크족으로 독실한 이슬람교도였다. 티무르 제국이 무너지고 난 15세기 중반 킵차크 칸국의 일족인 샤이바니가()의 아불 하일한이 투르크족을 이끌고 시르다리야 강을 넘어서 부하라에 입성했다. 이후 중앙아시아는 타지크족을 제외하고 투르크족의 나라가 되었다.

투르크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터키는 자신들의 교과서에서 흉노를 투르크족 최초의 국가로 정의한다. 흉노는 소빙하기를 맞아 남하하면서 돌궐 제국을 세웠다. 이들의 일부는 셀주크투르크와 오스만투르크를 거치면서 유라시아의 수많은 나라와 제국을 일으켰다. 현재 유라시아 동서에 걸쳐 넓은 지역에 사는 대다수 주민들은 주로 북방 몽골로이드계 투르크족이다.

한국인은 수천 년 동안 정주민족이기 때문에 지역과 민족을 동일시하지만 다른 나라는 위에서 보듯이 사정이 다르다. 울산대 논문에서는 이 문제를 간과한 것이다. 만약 지금의 베트남이 한민족과 게놈이 유사하다면 그건 중국에서 내려간 비엣족과 타이족을 말하는 것이지 동남아 남부에서 수천 년 동안 생존한 따이족, 므엉족, 크메르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에서는 민족의 정체성을 주로 언어와 세계관에서 찾는다. 비교언어학자 카스트렌(Matthias Alexander Castrén)은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의 유사성을 주장하면서 동북아시아의 투르크어족, 퉁구스어족, 몽골어족를 하나의 범위로 묶었다. 그렇지만 카스트렌의 주장은 계통이 불확실한 한국어와 일본어를 포함시켜 많은 논란을 낳았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자들은 아직까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과 투르크족, 그리고 통구스족의 유사성은 세계관에 있다. 이들 북방 민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유사성은 샤머니즘이다. 샤머니즘은 인간 세계와 영 세계 사이의 중개자 또는 메신저가 있다고 전제한다. 바로 그 메신저인 무당은 인간의 영혼을 수선하여 질병을 치료하며, 지역 사회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 초자연적 영역에 도움을 요청한다. 한국에선 무속신앙이 이에 속하며, 몽골과 북아시아 일대의 텡그리 신앙이 샤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8세기 고선지 장군의 탈라스 전쟁의 패배 이후 중앙아시아는 이슬람화되었지만 곳곳에 샤머니즘의 흔적이 있다.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족들은 성인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고자 하는 기복 신앙으로서 이슬람을 이해한다. 그들은 성인들이 묻혀 있는 성묘에게 신령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아기를 낳게 해준다는 성묘, 피부병에 특별히 효험이 있다고 하는 성묘, 심지어 돈을 벌게 해준다는 성묘도 있다.

카자크인은 샤만을 박스(баксы), 키르기즈인과 우즈베크인은 박쉬(бакшы)라고 부른다. 그들은 즉흥시와 같은 주문을 외우면서 신을 부르고 병자를 치료하는 등의 신비적 행위를 한다. 때로는 귀신 목소리나 독수리, , 호랑이, 늑대를 흉내 내기도 한다. 중앙아시아의 무당들은 귀신을 불러 자신과 일체가 되는 황홀경에 몰입한 후 그 귀신의 힘을 빌려 치유를 행한다. 심지어 귀신의 능력을 빌려 미래를 예언한다. 한국의 무당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논문에서 주장은 가급적 특수한 조건에서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울산대 팀은 게놈 분석의 유사성 하나로 한민족의 기원을 동남아로 단정 지은 것은 엄격한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게놈보다 더 확실한 문화나 세계관에서 보자면 한민족은 투르크족에 더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중앙아시아를 더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