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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전문가칼럼] 공감하는 문화외교를 해보자

  • 작성자 백주현
  • 등록일 2019.05.31
공감하는 문화외교를 해보자




백주현 前 카자흐스탄 대사


오늘날 문화 외교는 우리 외교의 중요한 축의 하나이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만들어 보내준 자료를 주재국 관련 기관에 배포하고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문화외교는 손이 많이 가고 시간과 에너지 투입이 가장 많은 일중의 하나이다.


주 카자흐스탄 대사로 부임하여 첫 일정이 K-pop경연대회 참석이었다. 카자흐 젊은이들이 흥겹고 역동적으로 우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환갑잔치에 모인 친척들이 강남스타일을 카자흐어로 개사하여 흥겹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는 놀랍기도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카자흐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한국 노래를 진정 사랑하는 걸까? 한국이 카자흐스탄 보다 잘 살고 더 좋은 전자제품도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을 좋게만 생각할까?


그러던 중 카자흐 문화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가서 카자흐의 돔부라, 코부즈 등 여러 악기를 사용한 전통 음악 연주를 듣게 되었다. 황량한 사막에 말 달려가는 소리, 기기묘묘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언제인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 왔다.


나는 문화원장과 상의하여 우리의 해금과 카자흐스탄의 코부즈로 양국의 음악을 바꾸어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해보자고 했다. 몇 달간의 준비 끝에 드디어 공연이 이루어졌다. 관중들의 반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웠다. 공연이 끝나고 별도로 나와 문화원장을 찾아와서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국제교류재단이 동남아 지역 국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아시아 문화원을 부산에 개관한 것은 바람직한 발상이다.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만한 일이다. 내가 귀국해서 남원 춘향제에 12일로 참여해보았다. 거기에 태국의 무용단이 초청되어 공연을 하는 것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공관장들이 바라는 일들을 우리 예술인들이 착상을 하여 벌써 하고 있는 것이 기뻣다.


1970년대 대학 시절 나는 미국문화원에서 영어회화 동아리 활동을 했다. 프랑스 문화원이나 독일 문화원에도 자주 가서 공연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했다. 그런데 그러한 장소에서 우리나라 문화가 소개되는 이벤트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던 중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 젊은이들 중에 일방적인 미국 문화의 전파에 대한 강렬한 반발도 있었을 것이다.


문화적 제국주의는 서양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늘 우리도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둘러볼 때이다. 케이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가 세계 곳곳에 유행하고 찬사를 받고 있다. 우리로서는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는 그러한 노력은 계속될수록 좋다. 그러나 한류에 열광하는 사람들에 섞여 앉아서 그들의 반응을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제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고 있다. 냉전의 종식으로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을 기대했지만 우리 모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커다란 소리를 내세우며 부딪치고 있다. 미국은 우방국들을 자기편에 줄 세우기할 기세이다. 그뿐이랴. 러시아도 이란도 베네수엘라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어제의 호기심이 쉽사리 적대감으로 번질지도 모르는 때이다.


우리가 마음을 사는 문화외교, 우리의 친구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공공 외교를 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우쭐하는 자세를 버리고 다가가서 함께 호흡하는 공감 외교를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