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전문가 칼럼

[전문가칼럼]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대초원 문명의 7가지 줄기” 소논문에 관한 고찰

  • 작성자 안완국
  • 등록일 2018.12.07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대초원 문명의 7가지 줄기소논문에 관한 고찰


안 완 국

키르기즈 & 터키 마나스 대학 박사과정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은 아직도 학계의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다양한 부족 국가들이 모여 초원이라는 틀 안에 하나의 유목제국을 이룩하며 살아온 역사는 어쩌면 이들의 선조 찾기 노력을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로잡고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공통된 하나의 민족기원을 찾아 이를 섬기고 기억하는 것, 그것은 중앙아시아 다민족 국가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난제인 국가 통합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국가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뭉쳐야 하는 꼭 필요한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Nursultan Nazarbayev)는 타 중앙아시아 국가 수장 중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대처해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그는 대초원 문명의 7가지 줄기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발표해 카자흐스탄 역사학계 및 국민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멀리는 스키타이부터 가까이는 훈족까지 이어지는 튀르크 국가의 정체성 논란은 아직도 많은 학자 사이에 여전히 논의 중이다. 하지만 정작 튀르크 민족은 생각이 다르다. 특히 대다수의 튀르크학 학자들은 언어, 문화, 고대 비문 해석, 유물 등을 통해 스키타이, 훈족을 자신들의 선조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튀르크 민족은 로마제국, 게르만족의 역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 찬란하고 독보적인 문명사를 지닌 유목민족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서 세계 학계에서는 아직 논란이 있긴 하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카자흐스탄의 기원사를 다시 써가고 있는 것이다. 즉 학계에 일고 있는 논란의 불씨를 잠재우고 유구한 역사를 보유한 자주 독립국을 천명함으로써 중앙아시아의 선두주자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대초원 문명의 7가지 줄기소논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논문에서 카자흐스탄은 앞으로 어떤 역사관으로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 7가지 역사적 근거를 들었다.


1. 기마문화

튀르크 민족은 광활한 초원에서 유목 제국을 세우며 살아왔다. 그들에게 기마문화는 유목민족을 세계사의 무대로 등장시켜 준 대표적 상징이 되었다. 이는 비단 카자흐스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기마문화를 하나의 문화 코드로 설명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가령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의 보타이 (Botai) 유적지에서 발굴된 동물 뼈 중 90% 이상이 말뼈라는 사실을 들며 바로 이 뼈의 발견은 곧 카자흐스탄 영토에서 최초로 말을 길들였던 근거이고, 이는 카자흐 민족이 야생말의 가축화에 성공함으로써 결국 기마문화를 선도한 역사 속의 주인공이었다는 당위성을 갖게끔 하였다. 야생말 조련술에서 기마술로, 기마술에서 기마궁술과 기마병까지 이어지는 독보적인 유목민족의 문화는 모든 유목 제국사를 거쳐 간 튀르크 및 몽골인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자부심과도 같은 것이다. 카자흐인들의 선조들이 바로 역사 속 찬란했던 유목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게 해주었던, 야생말 조련술을 발전, 확산시킨 장본인임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튀르크 국가들에 들려주고 있다.


2. 금속 제련술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한 지금의 카자흐스탄은 바로 이 땅이 금속 제련술의 발생지임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 자료가 되어주고 있다. 아울러 보타이 발굴 작업에서 발견된 화로, 각종 금 장신구 및 수공예품, 무기 등의 유물은 초원 문명기술, 다시 말해 카자흐 선조들의 지혜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척도로써 활용하고 있다. 이는 정착의 역사를 거쳐 온 민족들의 풍부한 유물보다 유목 생활의 특성상 적을 수밖에 없는 상대적 빈약함을 채워 주는 보완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유물에 반영된 동물 양식


자연에 대한 중앙아시아 튀르크인들의 자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목민들에게 동물은 삶의 동반자이자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방식은 초원 문명을 영위했던 민족에게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해주는 토대가 되었다고 소논문은 말하고 있다.


몽골에서 발견된 제2돌궐제국 당시 통치자 빌게 카간 (Bilge Kagan) 비문 상단부에 산양이 단순 표지(標識)로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튀르크 민족들의 전설 및 신화에서 늑대가 젖을 먹여 아이를 키우고 차후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내용을 쉽게 볼 수 있다. 튀르크 민족의 강인함과 모성애를 늑대라는 동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흰표범을 국가표지로 사용하는데 고양이과 동물 중에서도 가장 희귀하고 독특한 흰표범을 선정한 점 역시 자신들의 독보성과 강인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4. 황금 인간


황금 인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카자흐스탄의, 더 나아가 튀르크 민족의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다. 황금 인간은 카자흐스탄 투탕카멘이라고도 불리며 튀르크인 기원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1969년 이식 쿠르간에서 발견된 무덤의 발굴 작업은 카자흐인들에게 자신들의 기원을 정립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소논문에서는 강인한 유목제국의 권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섬세한 미적 감각이 녹아있는 황금 인간 유물을 통해 통치자에 대한 선조들의 섬김 정신과 그들만이 갖고 있던 고도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황금 인간 이야기는 부족 단위의 이동 생활양식을 가진 튀르크 민족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기원의 뿌리를 얘기해 줄 소중한 자료로 여긴다. 그리스어로 스키타이 (Scythian), 페르시아어로 사카 (Saka)라고도 불리는 황금 문명의 주인공이 바로 유라시아 일대를 오랜 세월 지배한 자신들의 선조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튀르크 민족의 기원 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터키 학자들 사이에서는 스키타이에서 훈 또는 흉노까지 이어지는 족보를 튀르크 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받아들이는바, 그 근거로 언어의 유사성과 유물이 발견되는 장소와의 상관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튀르크 국가들의 맏형 역할을 하는 터키의 주장을 등에 업고 카자흐스탄 또한 유구한 역사를 지닌 튀르크 선조들의 적자(嫡子)를 자처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5. 튀르크 세계의 요람

알타이산맥이 튀르크인들에게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유목민들 삶의 시작과 끝, 초원 문명에서 피어난 제국의 시작과 끝이 바로 이 알타이산맥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논문에서는 자신들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알타이산맥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카자흐스탄의 기원사와 연결해 특별한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다. 알타이산맥의 지정학적, 역사적 중요도는 다음에 언급될 실크로드와 연결된다.


6. 실크로드


실크로드는 모든 유라시아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정치적 또는 경제협력의 상징이자 도구이다. 카자흐스탄 역시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가지는 지정학적 적합성, 즉 서구세계와 아시아를 연결해주는 문명교류의 통로로써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의미에서의 길이 아닌 유라시아의 사방을 연결하는 중심지, 무역 및 문화를 비롯해 인류 역사 대변환의 무대가 바로 카자흐스탄 영토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크로드는 다민족 간의 지적 교류 및 무역의 장으로써 형성되어 발전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유목제국의 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가교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튀르크 민족은 실크로드의 운영권을 토양으로 하여 찬란한 유목 제국사 문명의 꽃을 피웠으며 고대에서 중세로 그리고 근대로의 세계사 진화에 거름 역할을 해주었다.


카자흐스탄이 실크로드의 지정학적 중요도, 특히 실크로드가 실질적으로 존재했음을 나타내주는 역사적 근거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함의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실크로드가 유목제국, 튀르크 민족에게 큰 의미가 있는 만큼 유라시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도구로써 이를 활용하려는 국가들이 적지 않다. 카자흐스탄도 주도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많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특정 국가의 소유물로만 볼 수는 없다. 과연 이 쟁탈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나라는 과연 어느 나라가 될까? 두고 봐야 할 일이다.


7. 카자흐스탄 사과와 튤립의 땅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였던 알마티는 카자흐어로 알마아타 (Alma-Ata), 즉 사과의 시조 또는 도시라는 뜻이다. 카자흐스탄의 남쪽에 위치하며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와 육로로 3시간 거리에 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논문에서 현재 전 세계인이 즐겨 먹는, 다양한 사과 종() 중 가장 많이 분포해 있는 사과가 바로 카자흐스탄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사과의 퍼짐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지중해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언급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된 Regel 튤립의 원시 형태도 바로 그들의 카자흐스탄에서 발원했다고 말한다.


카자흐인들이 역사적 발원지를 얘기할 때면 반드시 사과와 튤립을 언급하는 함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사과와 튤립의 발원지라는 부분에도 물론의미가 있지만, 사실 그보다 실크로드를 통한 전 세계로 퍼지게 됐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시작과 퍼짐 그리고 끝이 모두 카자흐스탄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역사의식의 고찰을 위한 과제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대초원 문명의 7가지 줄기소논문은 이렇게 7가지를 역사적 근거로 들며 자신들의 과거를 재조명하고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하는지를 대통령의 입을 통해 국제사회에 말하고 있다. 즉 대통령은 몇 가지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의 리더로서 이루어야 할 목표들에 대해 언급했다.


1. 2025년까지 고고학과 문화학 분야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과 정형화되고 체계화된 국제사회와의 장기적 협력 가능성 타진

2. 초원 문명, 즉 카자흐스탄의 위인들에 대한 업적 재조명 및 보존

3. 다양한 박람회를 통한 국제사회에서의 튀르크 민족의 부흥

4. 박물관 개보수 및 건립, 역사재건단체의 설립을 통한 유물 보존 및 관광산업 발전으로의 전개

5. 구전문학과 전통음악 등 예술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국제사회로의 확산

6. 영화, 다큐멘터리, TV 시리즈물 등의 영상매체를 통한 대 서사극 제작과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알맞은 역사 주제 방송 프로그램 확충

위에 나열된 6가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실현될 때만이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 더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의 선두 주자로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바람이 과연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선보여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결론


현재 이 소논문은 한국어, 키르기스어, 헝가리어, 영어, 아제르바이잔어, 몽골어, 타타르어 등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현재도 계속 번역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카자흐스탄의 행보는 비단 대통령의 언어를 전달하려는 노력에 그치지 않고,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확보해 유라시아를 이끌어 갈 선두주자로서 입지를 다지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고고학과 첨단 디지털 기술력을 접목한 역사의 재탄생, 이를 통해 전 세계가 접하게 될 카자흐스탄의 외침, 외국 학자들과의 협력 등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기원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는 것 또한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중앙아시아의 인접 국가이면서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키르기스스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중앙아시아의 실질적인 선두주자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있다면 이 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키르기스스탄이기 때문이다. 주도적 위치에 있는 국가의 적극적인 행보가 중앙아시아 전체의 발전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연쇄 유발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의 논리가 항상 그러하듯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독단적인 중앙아시아 운전자 역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안 요소는 항시 존재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내(域內) 균형의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역할은 어쩌면 그들보다 더 크다고 할 것이다. 힘의 균형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균등한 기회의 장이 될 것이며 또한 상생발전의 효과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소논문의 결론에서 과거에 긍지를 가지고 오늘의 가치를 소중히 하며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갖출 때야 비로소 국가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의 저력을 이웃 국가에 내비치려는 의도가 과연 얼마만큼의 성공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이에 대해 인접 국가들은 어떤 자세를 취할지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다민족이 공존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공동체 형성 과정과 공화주의 국가체계 달성을 향해 달려가는 다채로운 모습들을 동시에 목격하는 중이다.



※ 전문가 칼럼은 첨부파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