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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중앙아시아 경제 진출의 비전

  • 작성자 전대완
  • 등록일 2020.05.15

중앙아시아 경제 진출의 비전

 

2020.5.11()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 사이 경제협력 역사에 있어서 시그니처 프로젝트(Signature project)라고 꼽는다면, 단연 수르길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 이 사업을 두고, 우리 쪽에서도 정부시책의 화두가 되었던 자원외교, 그중 중앙아시아 진출의 효시 사업으로 꼭 만들어야겠다는 결기가 드높았었고, 우즈베크 쪽에서도 한국 측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음으로써 우즈베크 투자의 안정성과 경제에 대한 국제적 신용도를 고양시켜야겠다는 의지도 강해, 마치 기적을 만들어내듯 상호 아주 좋은 조건에서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업은 한국 측 50%, 우즈베키스탄 측 50%, 우즈베키스탄 측은UNG(즈베크석유가스공사)이고, 한국 측은 한국가스공사·롯데케미칼·STX의 컨소시엄으로, 양국 간 최초의 공동사업이었습니다. 아랄해 인근 수르길 및 동·북 베르다 가스전을 추가 개발하고, 연계하여 가스·화학 플랜트를 건설하며 공동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측 컨소시엄은한국가스공사가 22.5%, 롯데케미칼이 24.5%, 그리고STX3% 로 구성되었습니다. 총사업비 39억불 규모이며, 그중 65%, 25억불은 한국 측의 전적 책임 하에 국제PF(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조달해야 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수르길 프로젝트는 주거래 투자계좌를 우즈베크에 두지 않고 한국에 두게 하는 극히 예외적 조치는 물론, 우즈베크 측으로부터 내부수익률 15%까지 보장받는 등, 과거 사회주의권 신생 독립국에서의 프로젝트 진출 케이스로서는 국제적으로 표본이 될 정도로 우수한 사업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 해에 세계PF상까지 수상하기도 했으며, 그런 관계로 25억불 규모의 국제PF 조달에는 한국·중국·독일·국제금융기구 등, 여러 산업·투자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별반 어려움 없이 완결될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8년 완공되어 연간고밀도 폴리에틸렌 38만 톤, 폴리프로필렌 8만 톤, 그리고 메탄가스 260만 톤 정도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산품은 중국, 동유럽, 그리고 인근CIS 국가들에 판매되고, 연간 매출액도 9억불 이상의 규모로 운영되며, -우 합작사업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수르길 프로젝트는 아직도 문뜩문뜩 눈앞에 스쳐 떠오르며, 불연 듯 번지는 감격을 느끼곤 합니다. 사업 진행 초기에는, 모두들 이렇게 자원외교를 한답시고 판만 벌려 폼 잡다 말 것이라는 진한 우려와 불안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이 자기들 안방 신주단지처럼 마냥 끼고 안은 가스전을 과연 외국에 내어줄까? 자신이 없었고, 카자흐스탄에서의 석유화학단지나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들과 같이 끝내는 허망하게 돌아서야만 하지 않을까? 사회주의경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아니면 외국인 투자를 공것, 공득지물(空得之物) 정도로만 생각하려는 관습적 한계를 깰 수는 있을까?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은 달랐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그니처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대한민국을 끌어안았습니다.


프로젝트의 현장, ‘수르길이란 작은 마을에 처음 갈 때는 길다운 길이 없어 사막을 가로지르고, 스텝지역을 가로질러 온종일 달려야만 했습니다. 차는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썼고, 바퀴는 온통 흙투성이였습니다. 현장은 모래바람만 세차게 불어오는 황량한 벌판,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자본이 수 조 원이나 투자가 이뤄지면서, 지평선이 바뀌고 기적 같은 광경을 창출하는 게 목격되었습니다. 2만 여 명의 노동자와 사무원들이 북적대며 연신 뽀얀 먼지를 뭉글뭉글 피워 올리던 광경이나, 특히 새벽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줄 지어 식사를 기다리던 모습, 또 줄지어 화장실을 기다리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아직도 눈에 생생하기만 합니다.


그러면, 수르길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의 중앙아시아 진출, 특히 자원외교의 비전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TSR(베리아횡단철도), TCR(국횡단철도), 궁극으로는TKR(국종단철도)까지 연결되는 교통·물류·자원의 요충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또 앞으로 본격 전개될 유라시아의 통합에로 가는, 다량의 남···4각 협력까지 모색이 가능한 잠재력 높은 시장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역이 지역인 만큼이나, 우리경제의 진출이 조만간 다가올 선점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런 곳에서는 우리의 자원외교가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간 우리가 비교열위에 있는, 즉 자원의 직접 탐사 및 개발 등, 상류부문의 자원사업에 참여함으로써 겪은 뼈아픈 실패와, 중앙아시아에서의 하류부문에 참여함으로써 성공을 거둔 것을 비교·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알다시피, 상류부문에 있어서는 우리가 짧은 역사에다, 기술도, 자본도BP, 엑슨모빌, 로열더치셸, 토탈, 세브론, 아람코 등, 세계적 메이저들보다 훨씬 열위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자원사업에서 마냥 열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는 부문이 없지 않으며, 바로 자원의 가공·제련·판매 및 인프라 건설 등, 하류부문의 자원사업이 그것이겠습니다. 석유화학, 가스가공, 비료 및 탈황, 발전, 운송 인프라 등, 노하우 및 기술력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으며, 특히 EPC 부분에서의 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우리로서는, 특히 중앙아시아 자원외교 진출에 있어서는 이렇게 강한 하류부문에 치중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신북방정책을 본격 가동하며, 우리는 우선적으로 실현 가능성이나 현실성이 높은 곳, 곧 중앙아시아에서는 바로 하류부문의 자원개발 국책사업이 무진장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향하는 만큼이나, 그들도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게 현재의 목마름일 것입니다. 우리의 진출 기회는 무한히, 활짝 열려있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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