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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상호호혜적인 한-중앙아의 새로운 경제협력 체계 모색해야

  • 작성자 정민현
  • 등록일 2020.12.07

상호호혜적인 한-중앙아의 새로운 경제협력 체계 모색해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민현


중앙아시아는 동과 서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남과 북으로는 러시아와 남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신북방정책의 핵심파트너인 러시아와 신남방정책의 주요 무대인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지리적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각별하다. 우리나라는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과 카자흐스탄(이하 카자흐)1992년 수교 이후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이하 투르크멘), 키르기스스탄(이하 키르기스) 그리고 타지키스탄(이하 타직)과의 경제협력도 기대된다. 이 세 나라는 우즈벡, 카자흐에 비하면 아직 교역량이 많지 않지만, 자원이 풍부하고 우즈벡과 카자흐 못지않은 높은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 높은 성장잠재력에서 비롯하는 시장성, 남북과 동서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하면 중앙아시아 5개국과의 경제협력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장, 더 나아가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협력을 위해서 어떠한 협력체계가 필요할까? 답은 상호호혜성이다. 상호호혜성에 기초한 경제협력만이 협력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의 경제협력이 중앙아시아 경제의 지속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아시아 5개국의 협력수요에 대한 전면적 재인식이 필요하다.

중앙아시아 경제의 협력수요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가 지속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2000년 이후 중앙아시아 5개국은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2000년 이후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했다는 점 이외에도 중앙아시아 5개국의 경제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 교역조건에 따른 명목 GDP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생필품 등의 주요 소비재 수입의존도가 높고, 원유, 천연가스 등의 천연자원 수출의존도가 높아 교역조건(terms of trade)에 따라 명목 GDP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둘째,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명목 GDP는 높은 동조성(comovement)을 보인다. 러시아에 대한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수의 러시아로부터의 노동소득 송금(remittance)에 크게 의존하는 키르기스와 타직 경제는 러시아 경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 이외에 중앙아시아 5개국은 경제발전단계 측면에서 국가별로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통상적인 분류기준인 소득 수준에 따라 우즈벡, 카자흐, 투르크멘 3개국을 중진국(middle-income country)으로, 키르기스 및 타직은 저소득국(low-income country)으로 분류할 수 있다.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그 국가의 산업구조는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중진국인 우즈벡, 카자흐, 투르크멘과 저소득국인 키르기스와 타직은 산업구조 측면에서 각기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즈벡, 카자흐, 투르크멘은 제조업 육성이 매우 부진하다. 제조업이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초반에 머물고 있다. 중진국 평균 수준인 20%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카자흐의 제조업 생산 비중은 11%에 머물고 있어 소득 수준이 훨씬 낮은 베트남의 제조업 생산 비중(15%)을 하회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제조업 생산 비중은 12% 정도로, 1인당 GDP로 평가한 성장 단계에 비추었을 때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중진국에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 국가의 기술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발달이 매우 부진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전자, 통신, 자동차 등 중·고부가가치 제조업의 생산 비중은 그 성장세가 매우 더디다. 카자흐의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생산 비중은 베트남의 5.5% 수준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2% 수준이다. 이는 이들 중앙아시아 중진국에서 구조전환이 지연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편 낮은 토지 생산성으로 키르기스의 농림수산업 부문 생산 비중이 저소득국 평균인 25%를 밑돌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키르기스와 타직의 산업구조는 저소득국의 그것과 대체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문제는 이들 중앙아시아 저소득국이 해외송금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르기스와 타직은 해외 이주 노동자의 송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송금의존도)이 약 30%에 달해, 저소득국 평균인 6%를 크게 상회한다. 이는 키르기스와 타직의 산업기반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앞에서 살펴본 중앙아시아 5개국의 경제성장 평가를 토대로 이들 국가의 지속성장을 위한 구조적 측면의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중진국인 우즈벡, 카자흐 그리고 투르크멘의 장기성장 과제는 산업구조 다각화(diversification)와 고도화(advancement)로 요약할 수 있다.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특히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중·고부가가치 제조업의 육성이 여전히 부진하다. 이는 이들 국가의 높은 천연자원 의존에서 비롯한다. 원유, 천연가스, 금 등의 천연자원 부존이 풍부하여 오래전부터 천연자원 생산과 수출에 크게 의존해왔다. 실제로 천연자원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나타내는 천연자원 지대(rent)가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6%에 달해 중진국 평균인 5%를 훌쩍 뛰어넘는다. 문제는 천연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만성화되는 이른바 나쁜 균형(bad equilibrium)”으로 경제가 수렴할 경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요원하다는 사실이다. 중진국에 있어 장기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질적 성장(qualitative growth)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 국가에 있어 이러한 산업구조 다각화와 고도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중앙아시아 저소득국인 키르기스, 타직의 성장과제는 무엇인가? 이들 국가가 직면한 성장과제는 물적 자본(physical capital) 확충 및 산업기반 마련으로 요약된다. 물적 자본을 조속히 확충하여 산업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노동자 해외 이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력이 자국 산업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경우, 자본 확충이 어려워져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도 성장이 오랫동안 지체되는 이른바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시달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노동력을 주변국에 직접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식품·의류와 같은 노동집약적 경공업 품목에 노동력을 내재(embed)하여 해외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국내 산업기반을 형성하여야 한다. , 주변국보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자국의 경제발전 단계에 맞는 노동 집약 경공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 식별한 중앙아시아 경제의 성장과제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한-중앙아 경제협력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중진국인 우즈벡, 카자흐, 투르크멘과는 중·고부가가치 제조업 부문의 기술교류가 절실하다. 우리 기업이 중앙아시아 기업에 중·고부가가치 육성에 필요한 기초지식, 적정기술의 이전·공여를 통해 이들 국가가 직면한 산업구조 다각화·고도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기술 교육·창업 기관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도모하는 한편, 학생 교류 등을 통한 인적자본 확충 및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고양하는 방안도 있다. ·고부가가치 제조업 육성에는 보통 대규모의 자본 투자가 필요하므로 활발한 민간 투자를 위해 금융시스템이 발전해야 한다. 따라서 금융 제도 발전을 위한 자문 상시화 및 민간 금융회사 간 교류를 촉진하는 플랫폼 구축을 고려할 수 있다.

키르기스와 타직은 산업기반 조성을 위한 기초 인프라 부문에서 FDI를 촉진해야 하므로 이들 나라에 대한 도로, 전력 등의 산업인프라 및 주거, 보건 등의 기초 생활인프라 조성을 위한 FDI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키르기스와 타직은 교통 및 통신 인프라가 매우 낙후되어 있어 도로 및 통신장비의 보수와 건설에 필요한 국내 및 해외 자본 유치를 꾀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물류·운송 인프라 확충을 목표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 위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높은 경기 변동성에서 비롯되는 투자 수익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PPP 형태의 투자를 장려하는 투자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집약적 경공업 부문 협력이 절실하다.

중앙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기성장의 길은 험난하다. 한국과의 협력이 중앙아시아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어느 한쪽의 경제적 이익만 보장한다면 협력의 유통기한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핵심은 상호호혜적인 협력체계 구축이다. 이를 통해 한국과 중앙아시아 모두 물질적 풍요로움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Q.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