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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전문가칼럼] 카자흐스탄으로의 의료 시스템 진출

  • 작성자 김명훈
  • 등록일 2019.01.31

카자흐스탄으로의 의료 시스템 진출



강남세브란스병원 김명훈 박사


카자흐스탄 제1TV 뉴스 타임에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하는 기사가 나온다. 심장병을 가진 11살 된 아들이 한국의 한 병원으로 초청되어 치료받게 된 사연을 소개하는 것이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가지?’ 처음 초청 소식을 듣고 이런 걱정을 지닌 채 한국에 가야 할지 망설였지만, 아이를 치료시킬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단다. 수술 당일, 극도로 불안하고 초초했지만 누굴 잡고 말 한마디도 나눌 수 없는 답답함에 수술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데 병원의 직원 누군가가 물을 한잔 건네며 익숙한 러시아말로 위로를 해 주더란 것이다. 뭐라 말할 수 없을만큼 큰 위로를 받았고, 그 이후로부터 병원생활에 안심을 하게 되었단다. 퇴원하는 날 병원에서 송별 행사를 마련하여 아이에게 축구공과 운동화를 완치의 축하 선물로 주며 이제부터는 마음껏 뛰고 놀아도 된다고 하는 말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며 그 날의 감격을 뉴스 인터뷰에 쏟아 놓고 있는 것이었다.

방송사에서 그 인터뷰를 할 때, 필자도 옆에 있었다. 필자가 조성한 1%나눔기금으로 치료비를 후원하여 이 아이를 초청하였고, 치료를 마치고 돌아간 지 두 달 후쯤 필자가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업무상 출장을 가는 기회가 생겨서 이 아이가 살고 있는 우스트카메노고르스크를 찾아가 이 아이를 만난 것이다.

이렇게 카자흐스탄에 첫 발을 내딛은 지 5년 반, 이 일을 계기로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해외협력사업 업무를 맡게 되었고 그동안 카자흐사탄을 열 여섯번 다녀왔다. 고위층 인사들, 여러 병원의 운영진들을 두루 만났고 대통령궁에도 들어가 주요 인사들을 만나기도 했다. 공공부과 민간부문의 병원건립 프로젝트들도 여러 건을 협의하였고, 꽤 규모 있는 병원 진출 계획도 구체적인 단계까지 준비하기도 했었다.


지난해 1112, 알마티에 작은 규모의 암전문클리닉을 개원한 것이 그간 활동의 결실이다. 클리닉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병원으로 새로 짓는 건물에 400를 임대하고, 장비와 시설 그리고 일부 인력까지도 임대한 병원의 것을 함께 사용하는 조건으로 원내원 클리닉을 개원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얻게 된 결론은 병원이 해외로 진출하고자 하면 소규모의 계획으로 민간사업자와의 협력을 통해 단독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처음에는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모델에 기초한 공공부문의 프로젝트를 검토했다. 종합병원을 건립하고자하는 민간부문의 대형 프로젝트 또는 이미 확보된 부지를 개발하기 위해 병원설립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들도 여러 건을 제안 받아서 검토했다. 모두 실현시키기 어려운 모델들이었다. 이후 대통령병원에 원내원 형태로 여성암전문병원을 설립하는 것을 시도하였고, 실행 가능한 수준까지 계획을 구체화하였으나 현지 투자 파트너 측에 이를 추진할 수 없는 변수가 생겨서 중단되었다.

카자흐스탄 공공부문에서 추진하는 병원건립 프로젝트는 민간부문으로부터 투자를 확보하고 일부는 공공부문에서 재정을 부담하는 방식 또는 주정부 및 중앙정부의 지급보증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 PPP 모델로 통칭되고 있는 이 계획은, 영국의 보수당 정권이 1992년 도입한 민간재정참여(Private Finance Initiative)프로젝트를 그 모델로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PFI 프로젝트를 통해 병원과 학교 교도소 및 여타의 공공부문 시설들을 700여개를 성공적으로 설립하였다. PFI가 영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공공부문의 재정 부족을 민간부문의 투자유치로 보완함으로써 사회 기간시설을공공부문에서 운영하는 것보다 민간부에서 운영하는 것의 효율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나자르바이예프 대통령이 2007년 연두교서에 민관협력을 기반으로 3년 내에 100개의 병원을 신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카자흐스탄의 의료발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0121220주년 독립기념일 즈음, 나자르바이예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2050전략을 공표하여 세계 30대 선진국 진입의 포부를 밝혔고, 이 계획에서 공공분야와 민간분야의 파트너십과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강조하였다. 이후 카자흐스탄 정부에서는 PPP센터를 설립하였고, 민간의 투자 참여와 공공병원의 위탁운영을 통한 민영화를 의료발전의 동력으로 삼았다.


이후, 카자흐스탄 공공 및 민간부문에서 우리나라의 병원들을 상대로 또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을 통해서 병원 건립 및 공공병원 위탁운영 프로젝트에 대한 협력을 지속적으로 제안해 오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양국의 사업 주체들의 공동협력으로 의료기관이 진출한 사례가 없다.

현재까지 독립 의료기관으로 진출한 병원은 강남세브란스병원이 갑상선암전문병원으로 진출한 “Korea Medical Center Almaty(KMCA)”, 외래진료소로 알마티에 개원해 운영하고 있는 “MPK 클리닉 꼭뎀그란드”, 알마티 노바클리닉에 개원한 청연한방병원”, 알마티 국립암센터 내에 운영하고 있는 서울치과”, 알마티 잠블라에 개원한 한의원 한솔메디컬센터등이 전부이다. 모두 외래진료소로 운영하고 있으며, KMCA는 종합병원인 케루엔 메디쿠스(Keruen Medicus)에 진료소 및 행정사무실을 임대하고 수술실 의료장비 입원실 등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병원을 건립하거나 기존의 공공병원을 PPP프로젝트로 추진하여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고 중앙정부의 투자금 상환에 대한 지금보증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역할 분담이 적절하지 않거나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측에서 협력조건을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카자흐스탄에서 제시하는 프레임으로는 한국의 병원 파트너측에 병원설립의 기술적 자문과 운영위탁을 요구하나 기술적 자문에 대한 보상계획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울러 위탁운영시 수익이 발생하기까지의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고 재정적자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손실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하기 때문이다. 셋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업자가 병원건립 및 운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을 설립하는 경우 그 주체가 의료인이거나 의료법인이기 때문에 병원운영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여건에서 출발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는 주정부 및 공공기관의 관계자가 프로젝트 추진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병원 건립과정 및 개원 후 운영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발주자측과 우리나라의 협력 파트너간에 입장 조율이 순조롭지 못하다. 넷째, 병원 운영 상 이해관계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카자흐스탄의 주체는 우수한 인적자원 구성을 담보하기 위해 한국 측에서 많은 전문인력을 투입하기를 바라고 있으나, 현지 구매력을 고려할 때 이는 인건비와 현지 체류비 부담 때문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다섯째, 프로젝트 추진 동기도 영향이 크다. 공공기관이 발주자인 경우, 물론 기관의 차원에서는 의료발전을 목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지만 실제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람의 목적은 다를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발표한 2017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서 100점 만점에 31점을 받았고, 국가별 순위에서는 180개국 중 122위를 차지하였.이러한 문제가 프로젝트 추진의 돌발변수가 될 수도 있으니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여섯째,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여력이 충분치 않은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카자흐스탄 측의 프로젝트 주체는 브랜드 가치를 고려하여 우리나라 대학병원급의 상급종합병원 혹은 대표적인 전문병원과의 협력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병원의 경우 정원운영의 규정이 엄격하여 인력운영에 제한이 많으므로 현지에 대규모의 인력투입이 필요한 경우 사실상 협력이 쉽지 않다. 일곱째, 계획의 불완전성이다. 프로젝트 추진 주체 측에서는 부지와 건물을 제공하는 정도로 투입을 한정 짓고 의료장비와 인력운영 및 병원운영을 한국 측 파트너에 요구하든지, 부지와 건물 그리고 의료장비까지는 투입하되 이후의 인력구성과 운영은 한국 측 파트너에게 요구하는 정도로 프로젝트의 추진계획이 개략적인 수준의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동안 카자흐스탄과 의료분야에서의 협력활동에 참여해오면서, 한편으로는 발전 가능성이 크지만 용이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한다. 큰 틀에서 볼 때, 카자흐스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PPP모델을 기반으로 해외의 의료 선진국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계획은 카자흐스탄의 정부 및 민간부문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모델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의료의 적정수익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의료수가 및 의료서비스 구매력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대통령의 선언처럼 3년 내에 100개의 병원을 추진하겠다는 식으로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PPP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정부에서 쿼터로 기본 수입을 보전하거나 수익을 내서 자생하기까지 함께 협력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 즉 카자흐스탄 현지의 의료수요를 감안해서 우선 육성해야 할 의료분야를 정하고, 하나씩 성공사례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지난 5년여 간 카자흐스탄을 오가며 제도적인 사회체계가 빠르게 개선되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그렇지만 의료기술 및 의료환경은 짧은 기간에 개선될 수 없으므로 시민들이 진료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일반 시민들도 질 높은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나라 의료기관들이 지원 및 협력하여 의료발전에 기여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양국의 의료협력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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