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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전문가칼럼]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사례가 북핵 문제에 주는 교훈

  • 작성자 김재민
  • 등록일 2018.08.20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사례가 북핵 문제에 주는 교훈


한국외대 터키·중앙아시아·몽골학과

박사과정 김재민

 

최근 북한의 비핵화는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카자흐스탄 방식이 대두되었다. 지난 5월 미 백악관에서 있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회동에서 카자흐스탄 비핵화에 대한 내용이 거론된 것이 알려지면서 그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그동안 북한은 지속적인 핵무기 실험·개발을 통해 국내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체제 유지를 도모하였으나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요구로 비핵화 카드를 수용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차례로 성사되었으며 국제사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비핵화 방식과 과정의 성공 여부를 뜨겁게 지켜보고 있다. 사실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국제사회를 위협할 때마다 쏟아지는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논의는 북한은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가?’가 아닌 북한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비핵화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과거 비핵화를 경험한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심층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예컨대 핵폐기 선조처 후 경제제재 해제라는 기조의 리비아 모델’, ‘단계적 핵군축과 경제제재 해제방식인 이란 모델’, 그리고 구소련에 속했던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 적용되었던 구소련 방식혹은 -루거(Nunn-Lugar) 방식이 크게 고려되어 왔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볼 때, 비핵화의 여러 방안 중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과정은 중요한 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중요한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의 핵보유와 비핵화 과정은 한반도 비핵화에 바람직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핵무기 보유 배경

소련의 핵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소련 지도부가 핵문제를 담당하는 특별 실험실 조성을 승인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원자력 프로젝트는 원자력 물리학자인 이고르 쿠르차토프(Igor Kurchatov)가 지휘했으며, 물류 및 군사 정보 활동은 인민위원회 총무이사인 라브렌티 베리아(Lavrentiy Beria)가 수행하고 관리했다. 소련은 유능한 물리학자들의 노력과 미국, 영국, 캐나다 등 각지에 정착한 비밀 요원 및 핵 전문가 네트워크인 원자 스파이망을 통해 얻는 정보 활동으로 단기간 내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1949829일 소연방은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지에서 코드명 첫 번째 번개(Первая молния)’인 최초의 원자폭탄 RDS-1(미정보국 명칭 Joe-1)을 실험을 진행했다.이어서 1953812일 같은 시설에서 최초의 소비에트 수소폭탄 RDS-6 실험에 성공하게 된다.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로 소련은 약 30,000개 이상의 전략 및 전술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199112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었을 당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 핵무기가 편재되어 카자흐스탄은 공식적으로 총 1410개 핵탄두를 보유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각 10개의 핵탄두가 장착 가능한 SS-18형 대륙간탄도미사일 104, 390X-55 순항미사일을 탑재 가능한 Tu-95M 전략폭격기 40기로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미국, 우크라이나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비핵화 과정

그러나 구소련체제의 붕괴로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카자흐스탄은 신속하게 비핵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 배경에 넌-루거 방식이 있었다. 물론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성공이 단순히 넌-루거 방식에만 의존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넌-루거 방식의 공로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카자흐스탄 모델혹은 우크라이나 모델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 -루거방식은 구소련 위협감소법(Soviet Threat Reduction Act)을 공동 발의한 미국의 상원의원 (Nunn)’루거(Lugar)’의 이름을 따서 -루거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협력적 위협감소(CTR)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이 모델은 구소련국가(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에 산재한 핵무기 및 핵시설을 해당 국가들과 협력하여 폐기 또는 감축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이 이를 위해 총 16억 달러 규모의 정부 예산을 마련하여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1992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으로부터 총 34천만 달러 가량을 지원받은 바 있다. 카자흐스탄에서의 CTR 프로그램은 크게 10개 분야로 걸쳐 이루어졌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단계적인 교육과 지원을 통해 핵무기, 핵폐기물, 핵시설 등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핵무기 생산 관련 과학자들에게 다른 평화적 분야로 전공을 전환토록 하는 등 폭넓게 이루어졌다.

카자흐스탄은 독립 이후 즉각적으로 비핵화를 추진한 국가지만 비핵화 정책을 추진할 당시 내부에서는 핵무기를 보존하고자 하는 지지자들 역시 존재했다. 핵무기 보유 지지자들은 핵무기 보유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 안보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과 비교할 때 불균형한 군사력을 보완함으로써 초강대국의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 외에도 기초 및 응용과학 발전 등 과학 발전을 위해 핵 단지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비핵화는 나자르바예브 대통령의 핵 대신 경제 발전이라는 확고한 정책적 신념과 국민들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로 적극 추진되었다.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 주변 지역은 450회가 넘는 소련의 핵실험으로 인해 상당히 오염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이루어진 핵폭발의 총 규모를 히로시마 핵폭탄과 비교하면 그 위력이 45,000배가 넘을 정도였고, 260만 명의 주민들이 피폭으로 인해 암, 갑상선 이상, 유전자 돌연변이 등 희생자가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비핵을 주창하는 사회적 운동인 네바다-세미팔라틴스크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의 모든 핵실험 시설 파괴, 방사능 및 독성 폐기물의 불법 폐기 금지, 나아가 핵위협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고자 한 네바다-세미팔라틴스크 운동은 카자흐스탄 국민의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나아가 일반 대중에게 핵의 위협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이유를 이해시키는 데 긍정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이러한 사회적 운동의 여파로 1991829일 카자흐스탄은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을 폐쇄하였다. 이어서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그리고 카자흐스탄은 구소련의 핵무기 처리에 대한 논의를 거쳐 19925월 핵무기의 러시아로의 이관과 핵을 보유하지 않다는 약속이 담긴 리스본 의정서(Lisbon Protocol)’에 합의하였다. 리스본 의정서에 따라 러시아를 제외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3개 공화국은 핵비보유국으로서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에 가입하기로 합의하였고, 19931213일 카자흐스탄 최고회의는 NPT를 비준했다. 카자흐스탄은 199421일에 121번째로 IAEA 회원국이 되었으며, 125OSCE 부다페스트 러시아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미국, 영국은 비핵화국가로써 카자흐스탄의 NPT 가입과 관련하여 안보 보장 각서에 서명했다. 이 문서는 자국 영토로부터 핵무기의 완전한 철수에 관한 카자흐스탄의 완전하고 철저한 의무 이행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성공적인 비핵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카자흐스탄은 19922월에는 전술핵탄두, 19946월 전략폭격기 Tu-95 및 순항미사일, 19954월에는 전략핵탄두를 러시아로 반출하여 신속한 비핵화를 진행하였다. 이는 독립 이래 국제사회의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 국제안보 강화, 국가 간 협력 발전, 국제기구의 역할 강화에 기초한 안보외교 정책으로 대량살상무기의 군축 및 비확산 체제를 강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카자흐스탄의 정책 노선을 보여주는 행보였다. 카자흐스탄의 신속한 비핵화는 국제사회로부터 크게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군축, 핵비확산 및 핵안보 분야에서 카자흐스탄의 세계적 지도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은 비핵화를 이룬 이후에도 IAEA, NPT를 비롯하여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핵공급그룹(NSG), 확산방지구상(PSI), 범세계 핵테러방지구상(GICNT), 중앙아시아비핵지대(CANWFZ) 등 다양한 기구를 통해 세계 핵안보를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카자흐스탄은 자체적 핵개발을 통해 핵무기를 보유했던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이 주변의 군사 강국들 사이에서 자신의 안보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핵무기를 신속하게 포기하고 안정적으로 국가 발전을 이룬 것은 비핵화의 성공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이 빠르게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냉전 이후 시대적으로 핵무기를 감축하고자 했던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의 경제 개발 및 개방 정책을 추구한 정치 지도자의 결단 그리고 국민들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의지 등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사례는 비핵화와 경제 발전을 맞바꾼 좋은 사례가 되었다. 향후 북한 등 핵보유국의 비핵화 과정에 카자흐스탄의 사례가 적용된다면 국제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핵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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