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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전문가칼럼] 민족 영웅 ‘오구즈 칸’을 통한 투르크멘 민족 정체성의 확립

  • 작성자 오상호
  • 등록일 2018.04.09

민족 영웅 오구즈 칸을 통한 투르크멘 민족 정체성의 확립


오상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원)


민족과 정체성에 관한 담론, 그리고 중앙아시아


공통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성립될 수 있는 민족이라는 통념은 무엇일까? 우리는 단순히 어떠한 전통과 역사를 공유하며, 동일한 언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특정 민족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민족이라는 비가시적인 하나의 틀을 나타내기 위해서 흔히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물질문화의 공유는 물론, 민족 구성원들의 정체성 확립 역시 중요하다. 특히 이러한 민족 정체성을 바탕으로 연결되는 구성원 개개인의 귀속의식은 사회의 집단적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대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민족 정체성 확립에 대한 여러 가지 양상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1991년을 전후로 하여 독립 국가의 위상을 가지게 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과거 소비에트의 그림자에 가려져있던 제각기 그들의 민족 정체성에 대한 담론에 직면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중앙아시아 국가 민족들의 정체성이나 문화를 하나의 특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중앙아시아 지역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마디로 단언하기에는 국가별 그리고 민족별로 너무나 상이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붕괴 이후 독립국가의 지위를 가진 중앙아시아 각국 정부들이 목표하는 정책 중 공통되는 지향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민족 정체성의 확립 및 강화라고 생각한다. 즉 중앙아시아 지역 각국 정부들이 소비에트 통치 기간 동안 훼손되었던 자민족의 의식을 다시금 견고하게 복원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러한 각 국가 당국의 방식은 다양한 가운데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 통치 기간에 사용한 러시아어 및 키릴 문자를 모국어 표현으로 대체하거나 라틴 문자로 전환하는 정책도 포함되며, 거주하고 러시아인들보다 자국민에게 행정적 차원의 우선권을 주는 정책도 여기에 포함된다. 아울러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해 앞서 언급한 사례들 이외에도 각국 국민들은 자민족의 역사적 업적과 같은 점을 언급하며, 현대 시민사회 속에서 민족적 자부심을 재차 역설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역사적 업적과 관련한 민족적 자부심이라는 맥락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오구즈 칸(Oghuz Khan)’에 대해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오구즈 칸은 과거 튀르크계 오구즈족의 인물로 그는 오늘 날 투르크멘 민족들의 민족적 영웅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면 투르크멘 민족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오구즈 칸이라는 인물은 과연 어떠한 객체로 인식되고 있는지, 또 그러한 인식은 현대 투르크멘 민족 정체성에 관한 담론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져볼 수 있는 것이다.


오구즈 칸과 투르크멘 민족


먼저 오구즈(Oghuz)’ 고대 튀르크어에서 'og'는 어머니를 뜻하며, 접미사 격인 'uz'가 첨가되어 통상 부족 집단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오구즈라는 용어 자체는 중앙아시아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데, 물론 시대별 혹은 민족별로 그 뜻은 각기 다를 수는 있다. 다만 현대 언어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튀르크-오구즈어 계통에서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 서부 지역의 언어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투르크멘어와 우즈베크어, 터키어 및 아제리어가 속한다고 보면 되겠다. 아울러 언어학에서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사람들의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점을 보면, 오구즈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익숙한 말일 것이다.

한편 오구즈 칸은 당시 오구즈족 중 한 인물일 것으로 판단되고, (Khan)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을 보면 유목민족의 군주, 즉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유목제국사회에서 의 의미는 공식적인 지위의 왕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비공식적으로 부족 집단의 합의 하에 선출된 대표로도 이해할 수 있는데, 오구즈 칸의 경우 후자로서 오구즈족에 어느 정도의 업적을 남겼던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그렇지만 오구즈 칸은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설 속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도 한데, 실존 인물로 간주할 것인지 가상의 인물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게 사실이다. 필자의 견해는 튀르크 문화가 서진하고 유목 튀르크족들이 거주하게 되었던 6세기 말에서 9세기경 오늘 날 중앙아시아 서부 지역에서 실제 오구즈족 사회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며, 오늘 날 그에 대한 업적을 더욱 우상화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투르크메니스탄 국민들의 정신적 지침서인 루흐나마(Ruhnama)’에서의 오구즈 칸은 시기적으로 훨씬 오래전 인물로 등장하기는 하나 그가 민족적 영웅이라는 점은 통상적인 사료에서 공통적이다. 그가 태어난 직후부터 언어를 구사했다는 점이나 40일 만에 청년이 되었다는 점 등은 일반적인 민족 설화의 특징을 가지며, 튀르크 민족들을 괴롭히는 용을 자신의 힘으로 무찌르고 왕위에 올랐다는 점도 민족을 지켜낸 전사이자 영웅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오구즈 칸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 국민들은 오구즈 칸이 자신들의 민족적 조상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민족 영웅이라는 이미지는 곧 오구즈 칸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들은 비단 추상적인 양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쉬가바트 중앙광장에는 오구즈 칸의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서있고, 역사교과서나 각종 서적에서도 빈번히 찾아볼 수 있다. 언론매체에서는 어느 곳의 신축 건물에 오구즈 칸과 관련한 도색작업을 하고 있다고까지 전한다. 또 루흐나마에서의 오구즈 칸은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민족 영웅이며, 오구즈족의 역사 및 민담을 담고 있는 오구즈나마(Oghuznama)에서도 오구즈 칸에 대한 탄생이야기와 타 민족과의 항쟁, 여러 지역에서 경험한 원정기적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 사회에서 오구즈 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대단히 경건하고, 민족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의미가 깊은 인물이다.

그렇다면 현대 투르크메니스탄 국민들의 일상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오구즈 칸을 민족 정체성 측면에서 해석한다면 어떨까? 소비에트 통치시기를 경험한 오늘날의 독립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독자적인 역사관을 수립하는 일은 자국민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사회문화적 차원의 출발점이 되었다. , 정치적인 면에서 중립국을 표방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독자적인 노선을 지향하는 차원으로만은 지난 소비에트의 잔재를 없애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대통령인 사마르무라트 니야조프(Saparmurat Niyazov)의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 안정화와 함께 민족 정체성 확립을 이루어 나가려 했다. 특히 부족주의적 전통이 강한 투르크멘인들에게 민족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역사 교육을 통한 단합 의식 수립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가적 움직임은 현 대통령인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edow) 시기에서도 투르크멘 문화유산 복원사업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다른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 나타난다고 볼 수 있으며, 국가별로 자국민들의 민족 단결성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과거의 역사 편력이나 민족 영웅 신화 등을 통하여 이에 부합할 수 있는 내용들을 연구하여 최종적으로는 신생 독립국으로서 국가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이 글에서 살펴본 내용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 하나인 투르크메니스탄의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사례이고, 그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정치 및 경제 부문뿐만 아니라, 인문사회학적 측면의 민족 정체성 확립에 관해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독자들이 오구즈 칸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 지역을 보다 총체적으로, 그리고 타 지역의 시각으로 걸러지지 않은 바람직한 이해를 하는 데에 부분적으로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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