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전환기 한-중앙아 미래 협력 방향
박정호(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중앙아 수교 30년, 협력 관계의 발전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1992년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수교 이후 지난 30년 동안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은 양자관계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왔다. 특히 정상회담 개최 및 고위급 인사들 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관계 발전을 추구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하여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한-중앙아 간 협력 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상생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목표 아래 한-중앙아 협력포럼을 창설 및 정례화하고 사무국을 설치했다. 이러한 <5+1> 협력체제는 한국과 중앙아 간 협력의 제도화를 위한 핵심 거버넌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유라시아 협력기구로 작동하고 있다.
아울러 2019년 한-중앙아 3개국(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간에는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양자간 협력 채널(한-우즈벡 워킹그룹, 한-카자흐 워킹그룹, 한-투르크멘 비즈니스 협의회)이 마련되었다. 2020년 6월에는 ‘한-중앙아 경제협의체’가 설립되었으며, 2021년 한-중앙아 협력포럼은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2021년 한국 정부가 ODA 협력을 확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중앙아시아 3개국(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은 중점 협력대상국이 되었다. 한-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은 보건의료, 문화, 교육, 농업, 디지털, 그린, 산업 인프라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는 추세다.
새로운 대외 환경의 조성과 협력 여건의 변화
주지하듯이, 현재의 대외 환경은 이전 시기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대외 환경이 조성되면서 협력 여건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현재 우리는 ‘글로벌 대전환’의 시기이자 ‘글로벌 복합 위기’의 시기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전자는 디지털과 그린 경제로의 전환을 상정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글로벌 차원의 중대한 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새로운 위기가 중첩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을 지칭한다. 다시 말해서, 기후 변화,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미국과 중국의 통상 분쟁 등과 같은 기후 위기, 보건 위기, 군사안보 위기, 경제안보 위기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이 바로 글로벌 복합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글로벌 차원의 새로운 도전 과제들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사회에 분절과 대립 등 새로운 구조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둘째, 세계화 시기의 핵심 담론인 통합과 상호 의존성의 의미가 대폭 축소되면서 탈세계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셋째, 신냉전 형태의 봉쇄와 단절, 가치에 기반한 진영화가 진행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대 권위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 및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넷째, 기존에 구축된 글로벌 가치 사슬(GVC) 대신에 ‘클린 공급망’ 또는 ‘프렌들리 네트워크’ 등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다섯째, 글로벌 위기의 종식을 위한 국제협력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 추세 강화, 다자주의와 국제기구의 역할 약화, 지정학 위기 등이 대외 협력 환경의 중대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와 주요 도전 과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와 중요성이 다시금 세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중·러 전략 경쟁 시기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강대국들 간 일종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2022년 10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지도자들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 회담에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간 지역 안보 확립과 핵심 협력 분야를 논의했다. 2023년 5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을 초대해 산시성 시안에서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연설을 통해 신시대 중국-중앙아시아 간 운명공동체 건설과 미래 협력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여러 구상들을 제시했으며, 참여국 정상들은 국제 및 지역 현안에 관한 의견을 폭넓게 교환하면서 상호 신뢰 확립 및 중점 협력 분야에 대해 논의했다. 2023년 9월 뉴욕 UN 총회 기간 중에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들과 ‘C(Central Asia)5+1’ 정상회의를 역사상 최초로 개최했다. 이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중앙아시아 지도자들은 지역 안보, 무역과 투자 증진, 지역의 연계성 강화, 국가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존중, 민주적 통치와 법치주의 개선을 위한 지속적 개혁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협의했다. 2023년 11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하여 정상회담을 진행했으며, 회담에서 자원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앙아시아에서 프랑스의 존재감과 입지 강화를 추구한 바 있다.
이처럼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의 관심지대로 부상하고 있다. 중앙아시아가 지정학적 측면(유럽과 아시아 연결 지대, 중동과 지중해의 안보 전략적 요충지)과 지경학적 측면(천연자원, 유라시아 교통물류, 에너지망의 중심지)에서 유라시아의 중심 지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상하이협력기구(SCO),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체(CAREC),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투르크어권국가기구평의회(OTS)등 유라시아 대륙의 대표적 다자협력체의 핵심 참여자다. 한편 한국과 관련하여 보자면, 중앙아시아에는 한민족의 후손인 고려인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해 주는 소중한 사회문화적 자산이다.
글로벌 대전환기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대내외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예를 들어, 미군 철수 이후 아프카니스탄의 안정과 안보 확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부정적 영향과 피해 최소화, 역내 정치적, 안보적, 경제적 불확실성 해소와 다자 협력 증진, 정치와 경제 개혁정책 추진을 통한 새로운 정치 리더십의 확립과 사회정치적 안정화, 강대국(러시아, 중국, 미국 등 서방세계) 및 제3세계 국가들과의 새로운 협력 방향 모색을 통한 국가발전과 경제 현대화 등을 들 수 있다.
한-중앙아 협력 거버넌스의 개선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새로운 대외 환경과 협력 수요에 근거한 협력 거버넌스의 개선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존의 협력 거버넌스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 작업을 진햄함과 더불어, 상생 협력과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협력체제의 구축이 특히 중요한 과제다. 이 점에서 최근 논의가 진행 중인 ‘한-중앙아 싱크탱크 포럼’이 하나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한-중앙아 싱크탱크 포럼의 출범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시기적 의미다. 2022년은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수교한지 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였다면, 2023년은 한-중앙아 관계의 새로운 미래 30년을 시작하는 첫 번째 해다. 따라서 새로운 협력 거버넌스의 구축은 미래 협력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필수적 준비 작업이다. 둘째, 정책적 의미다. 새로운 국제 환경과 대내외 협력 여건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중앙아 관계발전의 방향 설정과 중점 협력 사업 발굴(글로벌, 다자, 지역, 양자 차원의 단기 및 중장기적 과제 발굴)에 있어 새로운 접근과 창의적 발상이 요구되고 있다. 셋째, 제도적 의미다. 한-중앙아 수교 30년 동안의 핵심 성과로 협력 플랫폼 구축(한-중앙아 협력포럼 창설과 사무국 설치)을 들 수 있는데, 한-중앙아 미래 30년 협력의 체계적 준비 작업의 진행 및 내실화를 위해 기존 협력 플랫폼을 중심으로 새로운 협력의 기반과 틀을 제도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넷째, 정무적 의미다. 정부의 역할과 영향력이 강한 중앙아시아의 국가적 특성을 고려할 때, 정부간 협의 채널의 공고화와 더불어 상호 신뢰할 수 있는 한-중앙아 싱크탱크 간의 제도적 토대 구축은 한-중앙아 관계발전 및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유용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중앙아 싱크탱크 포럼은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변화(2세대 지도자와 신흥 엘리트 세력의 등장, 새로운 국가전략 방향 수립 등)를 적극 반영하고, 한-중앙아 협력의 지적(국가정책과 사회 변화에 대한 최신 정보 공유) 및 인적(관련 전문가 교류) 네트워크 확대와 중장기적 협력 방안 발굴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중앙아 관계 발전에 유의미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한국정부의 유라시아 네트워크 확장과 ‘글로벌 중추국가 건설’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중앙아 미래 협력 방향
새로운 미래 30년을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 방향은 아래의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상생 및 호혜적 협력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 및 추진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과 노하우 전수,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새로운 국가발전 및 경제협력 수요 반영, 동반 성장을 위한 상생 협력 파트너십 구축 등이 필요하다.
둘째, 수출지향형 제조업 육성 관련 협력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다. 특히, 수출 제조업 육성에 필요한 기초 지식과 기술의 이전 및 공여 활성화, 중앙아시아 산업구조의 다각화 및 현대화 지원, 한국의 기술 교육 및 창업 기관의 중앙아 진출 지원 확대, 학생 및 전문가 교류 활성화를 통한 지식 및 인적자본 확충, 청년 창업 및 기업가 정신 함양을 위한 제반 협력, 중소기업 육성 방안 지원 등이 중요하다.
셋째, 중앙아시아 시민들의 삶의 질 개선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발굴 및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보건·의료, 환경, 농업, 수자원, 교육 등의 분야에서 현대화 사업 진행, 교통 및 물류 연계성 강화, 행정 선진화 및 디지털 협력, ICT 기반 도시 인프라 개선 사업, 지방균형발전과 지역개발 분야에서의 협력 사업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글로벌 트랜드에 부합하는 협력 사업을 발굴해 진행해 나가야 한다. 디지털 분야에서 협력 방안 모색, 디지털 산업 발전을 위한 스마트 팩토리 및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인력 양성을 위한 프로그래머 및 정보관리 전문가 양성,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인터넷망과 전자상거래 시스템 개발 등에서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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