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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앙아 수교 30주년 기념 기획칼럼13] 경제안보차원에서의 한-중앙아 협력 30년: 평가와 향후 과제

  • 작성자 정민현
  • 등록일 2022.12.26

경제안보차원에서의 한-중앙아 협력 30년: 평가와 향후 과제


 

 

정민현(대외경제정책연구원)



1. -중앙아시아 경제협력 평가

 

2022년은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이 정식으로 수교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은 1992년 수교 이래 경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 경제협력 수준은 중앙아시아의 경제 수준과 성장 잠재력을 보았을 때 아직 그 가능성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이후 급성장한 중앙아시아와의 협력 수준은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갖추고 있는 다른 국가와의 협력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특히 무역 측면에서 지난 10년간 한-중앙아시아 경제협력은 유의미한 진전을 달성하지 못했다. 양자의 무역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교역액(수출, 수입 총액)이 한국의 전체 교역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10.6%에서 20210.8%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 정부는 이른바 신북방정책을 앞세워 유라시아 권역 경제와의 경제협력을 양적으로 제고하는 것을 목표했지만, 수치로 놓고 보면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신북방정책이 추진되었던 동안 대중앙아시아 교역액과 교역 비중은 소폭 상승하였으나 2019년 이후 다시 하락하여, 동 정책의 효과가 구조적 변화(추세 변화)를 배태하지 못하고 단기적 효과에 머무른 것으로 평가된다.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 수출입 규모에 있어 한국은 대체적으로 중요한 국가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중앙아시아 각국의 수출 및 수입 비중에 있어 10%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5년간(2016~20) 카자흐스탄의 전체 상품 수출과 수입에서 대한국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4%, 3.2%에 그치고 있다. 같은 기간 우즈베키스탄의 대한국 수출, 수입 비중은 각각 0.3%, 10.4%이다. 대한국 수출 비중은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한국으로부터의 상품 수입액이 전체 상품 수입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상회하는 높은 수준이다. 반면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의 경우 대한국 수출입 비중은 이보다 더욱 작다. 특히, 중앙아시아 저소득국인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대한국 수출입 비중은 모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이다. 한편, 중앙아시아 5개국 모두 러시아와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매우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지리적 인접성과 냉전 시기 동일한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한 교역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유와 천연가스, 광물 등의 천연자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중국에 주로 천연자원을 수출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에 광물(33%), 금속(29%) 등을 주로 수출하고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은 중국에 천연가스(99%)를 주로 수출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는 주로 공산품을 수입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러시아로부터 기계류(16%), 운송기기(9%), 화학제품(7%) 등을 주로 수입하고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로부터 기계류(35%) 및 운송기기(8%) 등을 주로 수입하고 있다. 제조 기반이 취약한 중앙아시아 저소득국 역시 러시아 및 중국산 공산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중국으로부터 의류(40%) 및 신발·모자(13%), 기계류(6%) 등을 주로 수입하고 있으며, 타지키스탄은 중국으로부터 의류(25%) 및 기계류(25%)를 수입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로부터 원유(44%), 금속류(12%), 식품류(11%), 화학제품(9%) 등을 수입하고 있으며 타지키스탄은 러시아로부터 원유(29%), 식품(11%), 화학제품(11%), 운송기기(9%) 등을 주로 수입하고 있다.

한편, -중앙아시아 무역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과의 무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러한 집중 현상은 지난 10년간 심화하였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교역이 한-중앙아시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5%(2011)에서 95%(2021)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편중 현상은 기본적인 국제무역론의 중력모형(gravity model)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와의 교역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보이지만 이는 해당국의 GDP 규모를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교역 편중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투르크메니스탄 그리고 한-타지키스탄과의 교역은 해당국의 GDP 규모를 고려해도 여전히 매우 작은 수준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투르크메니스탄과 타지키스탄과의 교역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경제 안보 시대의 한-중앙아시아 신경제협력방향

 

-중앙아시아 수교 30주년을 맞은 지금,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중앙아시아와의 꾸준한 민간 협력을 담보하기 위한 상호호혜적인 협력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견 개발도상국으로써 지속 성장을 위해 산업구조전환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중소득국(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및 저소득국(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으로써 산업기반 확충이 필요한 중앙아시아 각국의 협력 수요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시에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인접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별하여 협력 시너지를 높여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중앙아시아 모두 중요한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세계 각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른바 디지털 경제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을 슬기롭게 완료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여기에 미-중 전략 경쟁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본격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은 2020년 코로나 팬더믹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일층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침공이 단순히 상충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비롯한 갈등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패권을 쟁취하기 위한 강대국 간 첨예한 대립이라는 점, 그리고 갈등 구조에 중층성과 복잡성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일 수 있다. 따라서 세계화가 본격화되고 국제무역의 경제적 이점을 누리기 위해 보다 많은 국가가 시장을 개방하고 자유롭게 통상을 도모하던 상황은 앞으로 점점 보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예측하기 어려운 공급망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특정 국가 혹은 특정 권역과의 자유로운 무역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부정적인 외부 충격으로부터 자국의 공급망을 보전하는 이른바 경제 안보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환경 변화를 중앙아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경제 안보 차원에서 공급망 관리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러한 상호호혜적 협력체계의 지평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로써는 중앙아시아에 풍부하고 한국에 부족한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는 한편, 중앙아시아 각국의 성장 과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호혜적 협력체계는 한국의 공급망 관리 역량 강화를, 중앙아시아의 지속 성장의 발판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중앙아시아는 우리나라에 희소한 에너지원과 광물자원의 공급 역량이 다대하다. 주요 에너지원으로써 원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할 뿐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등 우리나라에 수출 경쟁력이 있는 상품 생산에 꼭 필요한 주력 수입 광종(우라늄, 구리, 아연, 니켈 등)의 부존량이 매우 풍부하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은 원유, 천연가스, 우라늄, 구리, 프로판을,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는 천연가스를, 키르기스스탄으로부터는 구리, 그리고 타지키스탄으로부터는 유연탄 등을 공급받는 원자재 공급망을 구상할 수 있다. 여기에 식량 안보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는 상황인 만큼,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밀, 옥수수 등의 식량자원을 수급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자재를 직접 수입하는 방법 뿐 아니라 가공 단계를 거쳐 부가가치를 높인 후 우리나라와 중앙아시아 주변국에 수출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중앙아시아가 최근 시대적 요구로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및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완료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협력체계를 구상하여야 한다. 최근 중앙아시아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으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국가 전략을 발표하였다. 뼈대는 공공영역의 디지털화, 민간영역의 디지털 산업 육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우리가 특히 잘하는 전자정부, 5G 통신망 구축 등 디지털 인프라 협력이 기대된다. 이후 제조업 기반이 갖춰진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반도체 등 IT 하드웨어 부문의 협력을 모색할 수 있다. 디지털 협력 기반이 한번 갖춰지면 투르크메니스탄 등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의 디지털 전환 시기에 맞춰 협력 대상을 손쉽게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반도체 등 IT 하드웨어 부문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여야 한다. 디지털 협력 기반이 한번 갖춰지면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의 디지털 전환 시기에 맞춰 협력 대상을 손쉽게 확대할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이 우리 기업의 신북방지역 진출 교두보가 되는 것이다. 더 멀리로는 러시아와 동유럽 그리고 아랍 여러 나라로의 디지털산업 진출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른바 디지털 실크로드. 기후 변화에 따른 탈탄소화 대응은 화석연료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당면 과제이다. 실제로 최근 양국은 탄소 배출 감축을 주요 목표로 중·장기 에너지 전략을 발표하였다. 궁극적으로 친환경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우선 화석연료를 통한 전력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 효율화 부문에서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후 이들 국가가 화석연료가 풍부한 점을 고려하여 블루수소, 더 나아가 그린수소 등의 친환경에너지 생산과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한 협력이 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수요가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원전 협력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발전이 뒤쳐진 국가로서 산업기반 조성을 위한 기초 인프라 부문에서 FDI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 대한 도로, 전력 등의 산업인프라 및 주거, 보건 등의 기초 생활 인프라 조성을 위한 FDI를 유도하여야 한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교통 및 통신 인프라가 매우 낙후되어 있어 도로 및 통신장비의 보수와 건설에 필요한 국내 및 해외 자본 유치를 꾀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물류·운송 인프라 확충을 목표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 위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높은 경기 변동성에서 비롯되는 투자 수익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PPP 형태의 투자를 장려하는 투자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집약적 경공업 부문 협력이 절실하다. 의류, 식품 가공 등의 노동 집약 경공업 부문에서 우리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여 해당 국가의 노동 집약 제조업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동 산업에 대한 한국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여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밀과 면화의 공급 역량이 양호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원자재를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수출하여 각각 식품과 의류로 가공한 후 주변국에 수출하는 형태의 공급망 구축을 고려할 수 있다. 특히, EAEU에 가입한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EAEU 회원국으로의 수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22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동시에 한국과 중앙아시아가 수교를 맺은지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중앙아시아 각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과 급변하는 대외환경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한-중앙아시아 협력체계를 요구한다. 특히, 무역의 의의가 상품 교환 그 자체에 있지 않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무역의 진정한 미덕은 교환을 통해 상품에 내재한 아이디어와 지식까지 교환된다는 것에 있다.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지적 자극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경제적 번영의 토대가 형성된다. 앞으로의 한-중앙아시아 경제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의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