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앙아협력포럼’을 통해 커지는 태양광 공급망 협력
양정훈(한국에너지공단)
‘한-중앙아협력포럼’은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사이의 포괄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한국 정부 주도 하에 2007년에 출범한 연례 고위급 다자협의체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탄소중립시대를 맞이하여 한국정부에 에너지 분야의 적극적 협력을 이 협의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타지키스탄에서 개최('21년 11월)된 ‘제14차 한-중앙아 협력포럼’에서 에너지 분야 협력을 처음으로 논의하였다. 이 포럼은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 에너지 관련 부처 공무원들과 네트워크를 새롭게 구축하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희망을 확인하는 등 에너지 분야 협력이라는 배를 띄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다음 단계로는 이 배에 어떤 물건을 실어야 하는지, 즉, 어떤 분야를 우선적으로 협력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였는데, 태양광을 우선 협력분야로 선정하고 2022년 10월에 부산에서 개최된 ‘한-중앙아 차세대 다이얼로그’에서 심도 있게 논의 하였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중앙아시아 5개국 차세대 리더 14명은 각 국가에서 추진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정책을 태양광 위주로 소개하고, 한국 측은 국내 태양광 정책과 태양광 산업현황 그리고 건물일체형태양광(BIPV, 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 사례를 소개하는 등 태양광 분야 협력에 필요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였다.
태양광은 무한한 에너지로 잠재력이 크고 가격도 계속 낮아지고 있어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때문에, 태양광은 전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정책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신흥국의 발전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태양광 발전 비중이 빠르게 커져가고 있는 상황도 한 몫 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유럽도 태양광 보급을 빠르게 증가시키고 있는데, 특히,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를 겪으면서 에너지 안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고, 가능한 한 모든 에너지 생산수단을 빠르게 도입하여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력한데 그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설치할 수 있는 태양광을 선호하고 있다.
태양광 산업의 밸류체인은 업스트림(Upstream) – 미드스트림(Midstream) – 다운스트림(Downstream)으로 구분된다. 업스트림은 폴리실리콘과 잉곳/웨이퍼를 생산하는 산업이고, 미드스트림은 태양광 셀과 모듈을 다루는 산업이며, 다운스트림은 태양광 모듈을 기반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 시공, 운영하고 보수하는 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업스트림 산업은 초기 투자액이 크고 기술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아 소수업체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시장구조로 쉽게 접근할 수 없지만, 미드스트림과 다운스트림 산업의 진입장벽은 상대적으로 낮아 쉽게 접근 가능한 반면 경쟁강도가 매우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태양광 산업 전 밸류체인에 걸쳐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폴리실리콘 시장의 64%를 차지하였는데,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에는 이 비중이 78%가 높아졌으며, 2023년에는 80% 이상으로 높아질 전망이라고 한다. 잉곳과 웨이퍼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95%와 97%로, 중국이 자의든 타의든 웨이퍼 공급을 중단한다면 태양전지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와 있다.태양광 셀과 모듈 산업에서 중국의 비중은 각각 79%와 71%로 조금 낮지만, 상위 10개 기업 중 일부 1~2개 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한국의 태양광 대표기업인 한화큐셀이 셀과 모듈산업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으나 가격과 규모를 앞세운 중국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중국이 태양광 전 밸류체인에 걸쳐 압도적인 시장을 차지하고 있지만, 태양광 시장 초창기에는 유럽과 미국이 전체 시장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이 태양광 공급과 수요 시장 모두 가장 중요한 국가가 된 이유는 2010년대에 중국 정부에서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2008년 이후부터 재정문제로 태양광 지원 규모를 축소한 반면, 아시아에서는 태양광발전 수요가 본격적으로 증가하면서 아시아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중국정부는 태양광발전 핵심장비에 50%를 지원하는 보조금 정책을 2009년부터 시작하였고, 이에 중국 기업들은 폴리실리콘 생산량을 늘려가는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비용 절감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중국정부의 연구개발(R&D)과 대규모 발전소건설 지원에 힘입어 태양광 비용과 가격은 2016년에 10년 전 대비 약 10배 넘게 하락하였고, 중국 태양광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점유율도 70% ~ 80%로 확대되었다.
이처럼, 중국 기업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 및 규모의 경제 정책을 통해 원가 절감에 성공 하는 등 높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고, 반면 국내 태양광 기업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국내 대표 폴리실리콘 생산기업인 OCI는 수익성 악화로 말레이시아 공장만 남겨둔 채 국내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했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웨이퍼를 생산하는 웅진에너지도 저가의 중국 태양광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려 2022년에 파산절차에 들어갔으며, 태양광 셀과 모듈을 생산하는 LG전자 역시 가격 경쟁의 심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2022년에 태양광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 모듈 산업은 중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내수시장에서 점유율을 50% 이상 유지하는 등 나름 선전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의 한계와 글로벌 공급과잉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어 언제든지 이 점유율은 하락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로벌 태양광발전은 중국과 미국 주도로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2021년 글로벌 누적 설치량 기준으로 중국은 33%, 미국은 12%이다. 미국은 자국 내 청정에너지 생산을 지원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2022년에 통과시켰는데, 폴리실리콘부터 웨이퍼, 셀, 모듈 등으로 이어지는 태양광 밸류체인 산업을 자국에 구축하고, 태양광 관련 제품에 대한 제조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 법을 통해 미국의 태양광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의 IRA법 시행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에 밀린 국내 태양광 산업에는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국내 태양광 대표 기업인 한화큐셀이 미국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REC 실리콘 지분을 인수하고, 현재 운영 중인 1.7GW 규모의 모듈 공장 외에 추가로 공장을 증설하는 등 미국 현지에서의 수직계화를 추진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유럽 태양광 시장 역시 미국 시장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위기가 닥쳤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축소, 중단하자 에너지 위기가 닥친 것이다. 유럽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태양광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 태양광 설치 붐이 일어났는데, 반대로 중국 태양광 부품소재가 유럽시장을 점령하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도 함께 발생하였다. 유럽에서는 이번 초유의 에너지 위기를 다른 분야에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태양광 분야에 대해 원자재 생산에 대한 환경규제 또는 유럽 역내에서 생산하는 원자재 활용 비율 확대 등을 통해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 태양광 산업에 호재가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 기업 역시 태양광 부품소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높아서 마냥 웃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국내에서 태양광 부품소재 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내수시장의 한계,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전기료와 인건비 때문에 중국제품과의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 국내 생산을 마냥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방안으로 태양광 공급망을 중국 외 다른 국가로 확대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업스트림과 미드스트림 산업은 전기료와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한국보다 더 낮은 지역에 공급망을 확보한다면 경쟁력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다. 국내기업 OCI가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폴리실리콘을 생산하고, 국내 일부 기업이 중국에서 모듈을 제조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태양광 공급망 다각화 측면에서 중앙아시아는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통적 에너지자원인 화석연료 의존도가 매우 큰 반면, 생산이 계속해서 감속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아울러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탄소감축 의무를 이행해야하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육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 되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한국보다 값싼 전기요금, 낮은 인건비를 제공할 수 있어서 가격측면에서 중국제품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고, 글로벌 수준으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글로벌 태양광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는 중앙아시아 국가 내 태양광 기술기반이 없기 때문에 글로벌 수준으로 기술을 유지하고 자국 자품에 대한 충분한 내수시장을 확보를 위해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한국과 에너지분야 협력을 하고 싶어 한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한국만큼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가 없기 때문에 한국을 선호한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호의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국내 태양광 관련 기업들은 선뜻 중앙아시아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라는 확실한 태양광 시장이 존재하는 이유도 있지만 중앙아시아 투자에 필요한 유인책이 없거나 정보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앙아 협력포럼’은 한국과 중아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분야 협력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그간 포럼을 통해서 중앙아시아 국가의 니즈를 파악한 만큼 중앙아시아 태양광 산업 육성과 관련된 정보를 한국기업과 공유하고, 태양광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매우 중요한 만큼 중앙아시아 정부부처에 정책적인 제언을 포럼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 또한 중앙아시아는 태양광 분야의 관련 기술이 부재하고 제조업 기반도 매우 약한 만큼, 포럼을 통해 기술과 인력개발도 지원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역사적 흐름이자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한-중앙아 협력포럼’이 국내 태양광 산업의 밸류체인을 다변화하고, 가격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