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산양식, 중앙아시아가 부른다
김성인(前한-중앙아협력포럼 사무국장, 現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석좌연구위원)
<키르기스스탄 ODA 사업의 의미>
지난 5월 23일부터 일주일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전문가 실사팀과 함께 키르기스스탄에 다녀왔다. 어느 곳에 수산양식센터를 세워주고 어떠한 역량을 개발해주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30년 동안의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 발전시켜왔다. 특히 한-중앙아협력포럼 사무국을 매개로 수산, 보건, 환경 등 제반 경제협력이 심화되면서 한국이 단순 구두 언급이 아닌 실질 협력의지가 있음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알려왔다. 일례로, 필자는 포럼 사무국장 재직당시이던 2019년 초, KMI 조정희 박사와 함께 수산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수산협력 불모지였던 중앙아시아 5개국을 모두 돌아다닌 적이 있다. 수산협력 전례도 없었고, 어찌보면 내륙국가와의 수산협력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던 때였다. 그 때의 발품이 현재 사업으로 이어졌는데 해수부나 KMI는 수산협력 잠재력을 읽었던 것 같다. 이후, 2019년 9월, 우리나라 국무총리가 키르기스스탄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간 수산협력을 의제로 다루었고,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 수산 ODA 담당기관인 KMI와 키르기스스탄 수산 주무부처인 농업지역개발부가 협력 MOU에 서명하면서 양국간 본격적인 수산협력의 물꼬가 트였다. 이어, 총리방문 후속사업으로 2022년부터 키르기스스탄에 국립수산양식개발센터를 설립하고 역량강화를 지원하는 50억 규모 프로젝트가 해양수산부 부처 ODA사업으로 선정되는 기념비적인 결과가 있었다.
수산양식 대국으로의 복귀를 염원하고 있던 키르기스스탄 정부로서는 매우 기쁜 소식이었을 것 같다. 필자도 밝은 수산협력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감개무량하기만 했다. 우선, 금번 키르기스스탄 수산양식 사업은 내륙국가에서 시행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협력 ODA 사업이자 중앙아시아 최초의 수산협력 ODA 사업이다. 또한, 키르기스스탄은 물론이고,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우리나라 ODA 중점협력대상국임을 감안할 때 키르기스스탄의 우수관행은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로 파급될 수 있다는 즐거운 예견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수산양식업 쇠락의 역사와 새로운 희망>
돌아보자면 중앙아시아 5개국은 1992년 독립을 얻었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구소련 당시 세계적 수준이었던 수산 양식업은 소련의 와해와 더불어 붕괴했다. FAO 중앙아사무소 담당관이었던 Raymon van Anrooy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1989년부터 2010년대까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어획 및 양식 생산은 70% 내지 80% 가량 줄었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각각 94%, 98%가 줄어들었다. 2% 밖에 남지 않은 붕괴된 건물을 생각하면 붕괴수순이 얼마나 엄청난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붕괴 이유는 모든 중앙아시아 국가가 비슷한 것 같다. FAO는 △연구 및 생산설비 투자 감소, △선박 및 부화장 유지를 위한 지원 감소, △수자원 기구나 수산양식전문가의 부재, △사료생산이나 선박 수리 등 관련 산업 도산, △수산양식을 위한 교육 부재, △수상자원 관련 책임, 권한 등에 있어 정부기관 간 갈등, △양식장 민영화 과정에 있어서 만연된 부패 등을 수산업 붕괴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자료분석과 금번 실사를 통해 정책의지와 역량부족이 진짜 붕괴이유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구소련 시절 중앙정부의 5개 스탄 지역에 대한 수산분야 인프라 투자나 연구, 열의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나, 반면, 스탄 국가들은 독립 후 그러한 인프라를 유지하고 수산 양식업을 관리하는 여유나 역량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구소련 시절, 소련 수산부는 키르기스스탄 지역에서 생태학적으로 물고기를 키우기에 적합한 지리적, 기후적 및 수문학적 여건을 면밀히 조사했고, 적합한 상업적 어류의 도입과 수조, 저수지, 케이지(cage, 가두리 양식장) 등 각종 양식기법의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현대적 방식에 따른 수조(pond) 어류 양식이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되어 70개의 소련 집단 농장에 수조 양식장이 있었으며, 대표적인 것이 260ha 규모의 우즈겐 양식장과 364ha 규모의 탈라스 양식장이었다. 우즈겐 양식장 하나만도 상업용 어류 400톤 생산 용량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에는 키르기스스탄이 송어양식에 유리한 기후 여건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 하에 무지개송어를 도입하였고, 같은 해에 추이 주(州) 저수지 양식장에 가재도 도입했다. 케이지 양식도 과감하게 이루어졌는데, 1988년 소련 수산부는 미화 43만불을 들여 스웨덴산 거대한 케이지를 구매하여 이식쿨(Issyk Kul) 호수에 설치하였고, 연 700톤 규모의 송어를 생산하였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은 자체 채란기술이 없어 무지개 송어알을 덴마크에서 사오고 있지만, 구소련 시절에는 송어를 비롯한 각종 어류를 채란하고 인공부화한 후 치어로 길러 어민들을 위해 방류하는 순환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되면서 수산양식을 위한 재정적, 기술적 지원이나 정책이 갑자기 사라졌고 20여년 이상의 침체상태의 지속은 수산업이 복원 불가능할 정도의 나락에 빠지게 된 것이다.
금번 실사를 통해 그 나락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키르기스스탄 수산정책자나 수산업자들의 고통과 고민을 공감할 수 있었다.
독립 후 키르기스스탄 수산업은 20여년 이상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 수산물 생산량은 급격히 감소되었고 이식쿨, 송쿨(Song-kul), 톡토굴(Toktogul) 저수지 등 수산 수면 기지도 훼손되었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고유종 및 상업용 어류들이 고갈되어 멸종위기에 있어 일정기간 동안 어획을 중단시키는 등의 조치를 고려한 적도 있다고 한다, 결국 키르기스스탄 수산국은 금지 조치만으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식쿨 부화장을 복구하고 기능 효율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호수의 이전 어류 생산성을 복구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였다는 것이다. 수산양식 전문인력 부족에 대한 수산국의 고민도 큰 것 같았다. 우선, 수산을 전공하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고, 자질을 갖춘 전문가도 적어 보였다, 수산 관련 주요 교육기관으로 알려진 아라바예브(Arabaev) 대학을 방문했는데 수산학과는 없었고 가축생산가공학과에서 수산학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고 한다. 가축생산가공학과 300명의 학생 중 51명이 수산학 전공을 하면서 재학 중 20여개의 수산과목을 수강하는데, 대학 내 수산관련 실험시설이나 기자재들이 열악해 보였다. 3평 내외의 실내 실험실에서 51명의 학생들이 실습이 가능할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연구 인프라는 더 열악하다. 수산연구 기관으로 과학아카데미 산하 생태환경연구소가 이식쿨에 있는데 독립 후 방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50명에 달했던 직원들은 거의 모두 나갔고, 그나마 비슈케크에 남아있는 4명의 인력도 모두 환경학 전공자이다 보니 전문적 수산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수산 양식업이 키르기스스탄 경제를 선도할 특급 유망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급증하는 수산물 수요다. 건강식품으로서 생선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함에 따라 국내 수요가 늘어나고, 러시아, 유럽, 중국 등 인근 지역에서의 생선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FAO 통계에 따르면 유라시아 지역에서의 생선수요만 1980년대에 비해 현재 10배 이상 늘어났다고 하며,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의 수산물 수요증가는 더 두드러진다고 한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키르기스스탄은 어류 부족에 기인한 전통적인 어류수입국이었고, 해마다 러시아로부터는 냉동청어, 고등어, 명태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는 민물 어류를 수입하였다. 그러던 키르기스스탄이 최근 수출국으로 변모하였다. 수산국장은 2021년 기준 5천톤을 수출했다고 하면서 공식적으로 등록된 양식장만 194개가 있고 그 곳에서 생산된 양만 10,344톤이라 말한다. 비등록 양식장은 1개 주에서만 200개가 넘을 정도로 불법양식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연어과인 무지개 송어와, 초어를 중심으로 민간 양식업이 번창하고 있는데, 생산자 마진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식업자의 스킬도 높지 않고, 재래식 생산시설이나 양식방법에 따라 생산하다보니 생산량이 수요량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강이나 호수주변에서는 땅바닥을 2m 정도 파면 물이 고여 연못이 자연 형성된다. 너도 나도 땅을 확보하여 연못을 만들어 재래식 양식을 하는 수준이다. 자체 채란 기술도 없어서 노르웨이에서 무지개 송어알을 비싸게 사다가 부화하여 기르는데, 부화율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종자는 살 수 없고 불임 처리된 알만 살 수 있다 보니, 자체적으로 채란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하고 바이러스에 취약하여 종종 때 죽음을 하는 수도 있다고 한다. 사료 사정도 좋지 않다. 무지개 송어 같은 고가 어종은 사료를 전량 수입하여 사육하고, 잉어, 초어 등 고유종들은 음식물 찌꺼기를 사료로 주고 있어 수질 오염이 심각하다.
<왜 한국인가?>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양식업의 발전은 고용 창출, 외화획득을 통한 빈곤 완화에 매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빈곤 문제는 심각한 편인 것 같다. FAO 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키르기스스탄 바켄(Batken), 이식쿨, 잘랄아바트(Jalal-Abad), 오시(Osh) 및 나린(Naryn) 주는 50% 이상, 비슈케크 및 추이(Chui) 주는 각각 11% 및 22%, 탈라스(Talas) 주는 44%이 빈곤수준이라고 한다. 양식장 하나당 수백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다 보니 정부로서는 양식업 지원이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 양식업자들은 정부에 전문인력 양성과 치어 보급을 위한 정부 역할을 당당하게 적극 주문하고 있다. 전문인력의 양성과 수산양식센터의 확충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재원도 있고 기술도 있는, 즉, 최고의 수산양식 기술을 갖춘 역량 있는 공여국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이 있었다.
금번 실사를 통해 한국을 향한 키르기스스탄 정부나 어민들의 숙원사항은 절실했다. 수산양식교육센터를 설립하여 전문인력을 양성해주고, 종묘양식을 포함, 기존의 양식장을 복원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지원을 받아 자체적으로 무지개 송어알을 채란하여, 부화시키고, 다량의 치어를 국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정부의 품격을 높이려는 의지가 숨어 있는 듯 했다.
대한민국은 한 세대 안에서 ODA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발전한 국가이고 삼면이 바다이기에 수산과 함께 성장하였다. 50년 만에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신한 ODA 역사도 놀랍지만, 수산 ODA의 역사도 참 놀랍고 다이내믹하기까지 하다.
수산물 양식 생산량이 세계적 수산 선진국인 노르웨이나 과거 우리나라에 양식기술을 전수해 준 일본을 제친지 오래다. 생산량에서 뿐만 아니라 뱀장어, 명태와 같이 종묘양식이 매우 어려운 어종의 완전양식기술도 개발했다. 한국은 태평양까지의 머나먼 회유거리상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연어 회귀가 이루어지는 나라로서 세계 5대 연어 회귀국 중 하나이다. 현재, 남대천, 북천, 명파천, 연곡천, 낙풍천, 주수천, 오십천, 마읍천, 가곡천, 왕피천 등 많은 연어의 모천이 존재한다. 수산양식기술 Top 5 국가로서 특히 채란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좋은 손재주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우리나라의 부화 성공률은 85%까지 달하며, 평균 수준인 70%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접한 바다 하나 없는 내륙국가에 수산양식 기술을 전파하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마치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 듯이 말이다.
한편, 중앙아시아로의 수산양식업 진출이 한국에도 유익한 측면이 많을 것 같다.
키르기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상업용 물고기를 키우기에 적합한 지리적, 기후적 및 수문학적 여건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기술 및 자본과 결합 시 커다란 시너지 효과가 기대될 수 있다. 양식설비, 사료, 가공 등 관련 우리 기업의 지원을 통해 키르기스스탄 양식업이 보다 현대화될 수 있고, 고가 어종의 생산 및 인근 지역으로의 마케팅을 통해 국가의 소득 창출에 직접적 기여가 가능하다.
<성공적 협력을 위한 정책적 제언>
우선,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제언하고 싶은 사항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수산 ODA가 중앙아시아 인근국가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 각 국가들은 적극적으로 자국의 협력필요사항을 한국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 주한대사관이든, 주중앙아한국대사관이든, 한중앙아협력포럼 사무국을 통해서든 간에 수산양식업 협력에 관한 각국의 의지와 수요를 해수부 등 관계부처에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ODA 신청 시 타 분야보다 수산 양식업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것도 실현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아울러, 한-중앙아협력포럼이나 정상회의 등에서 의제 설정도 중요한 사항이다.
한국도 키르기스스탄을 포함한 5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수산양식업 협력을 추진함에 있어서 유념할 점이 있다.
한국 정부는 금번 키르기스스탄 ODA 사업이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지역의 양식산업을 활성화하고 지역주민의 소득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업성과를 평가해 유사한 여건의 다른 중앙아시아에도 확대할 의지가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금번 실사를 통해 가장 절실히 느낀 점은 남을 돕는다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남들은 흔히 돈만 있으면 뭐가 그리 어렵겠냐고 반문하지만 ODA의 기본원칙은 상대국의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나와야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체계적인 준비와 전략을 수반하지 않으면 ODA의 진정성을 전할 수 없다. 특히, 지역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의지나 공감대가 그 어느 지역보다도 탄탄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현재의 키르기스스탄 양식방식은 다소 원시적이지만 그야말로 자연친화적 방법이다. 키르기스스탄에 현대식 기법이나 설비가 보급되면 생산은 배가될 수 있으나 불가피하게 바이러스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기술인 물속에 있는 바이러스를 살균하는 방법을 전수하기에 앞서, 자연친화적 방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현장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실패 사례도 적극 공유하여 수원국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주는 고려가 필요하다.
이러한 마음씀은 굳이 ODA 협력에서 뿐만 아니라 한중앙아협력포럼을 중심으로 구축된 경제, 문화, 산업 등 제분야에서 두루두루 추구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금년으로 30주년인 양국의 수교역하는 아직 젊지만 머지않아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가 상호 대체 불가한 관계로 발전될 것이다.
키르기스스탄 수산양식센터 설립 및 역량강화 사업은 50억 원이라는 비교적 큰 규모이며 우리나라 최고 전문가들이 5년간 참여하는 ODA 진정성이 있는 사업이다. 중앙아시아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에 시작되어 더욱 의미가 크다, 키르기스스탄 수산 ODA 사업이 조만간 모든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활발한 소통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