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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인도의 대 중앙아시아 전략

  • 작성자 현승수
  • 등록일 2021.09.24

인도의 대 중앙아시아 전략


현승수(통일연구원)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탈레반이 정권을 재탈환하면서 유라시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이 떠난 후 불안정성이 극대화된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싸고 중국과 러시아, 파키스탄, 이란 그리고 인도 사이에 엄청난 수 싸움과 신경전, 치열한 힘겨루기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글에서는 인도의 움직임에 주목하고자 한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이후,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의 친미 정권을 지지하고 반 탈레반 노선을 명확히 해 왔다. 또 지난 20년 간 아프가니스탄의 도로와 댐, 전력망, 학교, 병원 건설 등에 총 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한편, 국회의사당까지 무상으로 지어주며 아프간 신 정권의 굳건한 후원자로서 입지를 굳혀 왔다.

인도의 아프가니스탄 지원은 일차적으로 갈등국인 파키스탄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은신처가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안보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인도에게 있어서 아프가니스탄과의 우호 관계는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유라시아 중심부인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고자 하는 인도의 지경학적 전략과 관련된다. 인도가 아프가니스탄 서부 델라람과 이란의 자란지를 잇는 총 218 킬로미터의 고속도로 건설을 지원하고, 이란 남부의 차바하르 항 개발에 나선 것도 파키스탄에 막혀 육로로 접근이 불가능했던 중앙아시아로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인도가 중앙아시아에서 추구하는 핵심 목표는 인도 정부가 2012년 발표한 중앙아시아 연결정책 문서에 잘 드러나 있다. 동 문서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에서 인도가 갖는 핵심 이익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인도 역시 중앙아시아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우라늄,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 지하 에너지 자원에 관심이 많다. 인도의 에너지 안보 정책의 목표는 정세 불안이 상존하는 중동 산 석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아프리카나 미국 등에서 생산한 석유를 수입하거나 또는 석유가 아닌 다른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른바 에너지 자원 수입의 다변화 모색이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중앙아시아 산 천연가스는 인도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또 민간 원자력 에너지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인도에게 있어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매장된 우라늄의 수입 역시 중요하다. 중앙아시아에 묻혀 있는 금, , 알루미늄, 기타 전략 광물들에 대한 인도의 관심도 높다.

둘째, 인도는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경제 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한편, 적대 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며, 중국과의 경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 확장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며, 중국으로부터 빌린 부채로 인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주권과 미래 전망에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유럽이나 인도, 한국 등 다른 경제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그 효과는 미미하다. 인도의 경우,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과 투자 등 경협의 성과가 그리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확장에 대한 현지 국가들의 우려가 증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 인도에게도 경제 진출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인도는 중앙아시아에서 입지를 굳히게 되면 이를 발판으로 러시아와 유럽으로 시장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확장세를 견제한다는 장기적 목표를 갖고 있다.


셋째, 인도는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역내 국가들의 경제 통합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자로 나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인도는 20191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처음으로 인도-중앙아시아 대화를 개최했으며, 코로나19의 확산이 심각했던 202010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외교부 장관을 참석시킨 가운데 온라인상에서 제2차 대화를 가졌다. ‘인도-중앙아시아 대화는 인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와 안보, 경제 및 통상, 개발 등 폭 넓은 분야에 대한 협력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2020년 회의에서 인도는 중앙아시아에 10억 달러(한화 약 12,000억 원) 규모의 신용 한도 대출(Line of Credit)을 약속하기도 했다. 최근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는 인도 정부의 전략도 중앙아 연결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으며, 2017SCO(상하이협력기구) 정식 회원국 가입, 러시아 주도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 Economic Union)FTA 체결을 위한 협상, 2016년 이후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서의 적극적인 활동 등이 인도의 대 중앙아 전략의 방향을 보여준다.


다자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양자적 차원에서도 인도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이해를 갖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인도의 주요 전략적 이익은 자국의 원자력 에너지 안보 전략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매장되어 있는 다량의 우라늄을 수입하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세계 굴지의 우라늄 매장국으로 전 세계 매장량의 15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인도의 우라늄 수입의 80퍼센트가 카자흐스탄 산이었다. 카자흐스탄은 인도가 NPT(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핵공급국그룹(NSG, Nuclear Suppliers Group) 국가들과 민간 원자력 협력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을 지지하며, 인도의 NSG 가입에도 적극적이다. 2016년에 설립된 카자흐스탄과 인도 간 비즈니스협의회를 통해 양국은 우라늄의 대 인도 수출을 위한 수 개의 협정에 합의한 바 있고, 2019년에 두 나라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기간 동안 카자흐스탄 산 우라늄의 대 인도 수출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또 원유와 가스,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두 나라 사이의 협력이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세계 7위의 우라늄 수출국이며 인도의 원자력 발전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협력국이다. 양국은 2019년 우라늄의 장기 공급 계약에 합의한 바 있다. 인도와 우즈베키스탄 사이의 무역과 투자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양국 간 FTA 협상이 성사되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도는 파키스탄의 방해로 인해 막혀 있는 대 중앙아시아 교역 루트를 개발하기 위해 이란의 차바하르(Chabahar) 항구에 관심을 두고, 동 항을 현대화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 왔다. 차바하르 항은 이란의 유일한 인도양 연안 항구인바, 최근 우즈베키스탄의 국영 철도공사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으로 철도를 연결하는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차바하르 항을 통해 인도와 연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세4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 수출 대국이며, 인도의 입장에서는 투르크멘 산 천연가스가 TAPI(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 가스관을 통해 공급될 경우, 연간 33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다. TAPI 가스관은 지역 정세의 불안으로 여전히 건설 전망이 불투명하기는 하나, 인도는 자국의 에너지 안보 전략 차원에서 TAPI의 실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과 인도의 경제 협력 관계는 아직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인도가 최근 키르기스스탄에 매장되어 있는 금과 석탄, 우라늄, 안티모니 등 지하자원에 관심을 보이면서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키르기스스탄이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수자원도 대 인도 수력 발전 수출 전망을 밝게 해 준다. 최근 양국은 상호 투자 조약을 체결하고 인도-키르기스 비즈니스포럼을 조직하는 등 협력의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위에서 언급한 차바하르 항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키르기스스탄은 물류망을 정비중이다.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경제연합 가입국인 키르기스스탄은 인도와의 FTA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끝으로 타지키스탄은 자원이 빈약하고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아 인도에게 매력적인 경협 파트너는 아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안보적으로 인도에게 중요한 협력 대상국이다. 인도가 유일하게 해외에 설치한 군사 기지가 타지키스탄 영내에 있으며, 타지크 공군과 인도군의 합동 군사 훈련도 종종 실시되고 있다.


이번 탈레반 세력의 재집권으로 인도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일방적인 이란 핵 협정 탈퇴 선언으로 악화한 미국과 이란 관계도 인도에게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이란의 차바하르 항을 통해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로 연결을 시도하던 인도의 대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중국과 파키스탄, 탈레반 정권 사이에 결속이 강화된다면 인도에게는 분명 악몽같은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향후 인도의 중앙아시아 연결 전략이 어떻게 한계를 극복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