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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문가 칼럼 - 협력전망] 한-중앙아 협력의 흐름과 전망

  • 작성자 엄구호
  • 등록일 2025.12.22

한국과 중앙아시아 협력의 흐름과 전망

 

엄구호(한양대 국제대학원 석학교수)

 

 

역대 정부의 경제외교 중심 대중앙아 외교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역대 정부는 새로운 시장 개척과 천연자원 확보라는 주로 경제적 가치에 초점을 둔 중앙아시아 외교를 펼쳐왔다. 김영삼 정부는 신외교의 가치 아래 대우 자동차의 우즈베키스탄 진출을 비롯한 비즈니스 외교와 자원 외교의 시동을 통해, 오늘날 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누리는 경제 한류우호적 관계의 토대를 마련했다.


김대중 정부는 대우그룹 해체가 가져온 중앙아시아에 대한 충격을 수습하는 한편, 유라시아 대륙 철도 구상과 자원 외교의 지속을 통해 상호 신뢰 관계를 지켜내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한국의 첫 번째 중앙아시아 전략인 포괄적 중앙아시아 구상을 통해 중앙아시아와의 협력을 제도화했고, 특히 에너지 안보에 중점을 두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신아시아 이니셔티브에 중앙아시아를 포함하여 협력을 이어갔다.


중앙아시아와의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확대된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였다. 이 구상은 유라시아 대륙의 교통, 에너지 및 무역 네트워크 개발에 초점을 맞추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 위치에 있는 중앙아시아가 러시아와 함께 북방정책의 핵심 협력국으로 부각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신북방정책이라는 구상을 통해 그동안 논의되어 온 유라시아 국가와의 운송, 물류, 에너지 협력 등을 집대성한 ‘9개 다리(Nine Bridges)’를 발표하고,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설립하여 중앙아시아와 협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폐지하고 중앙아시아에 대한 구체적 협력 구상을 밝히지 않아 한국의 대중앙아 외교 추동력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20246월 중앙아 3개국 순방을 계기로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을 발표하며,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 중앙아시아를 핵심 광물 분야의 전략적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중앙아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구체적 사업을 진행하려 했으나 탄핵으로 협력 구상을 실현될 수 없었다.


이재명 정부는 연기된 한-중앙아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그 계기에 구체적 중앙아 협력 방안을 밝히겠으나 경제외교 중심의 기조는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기대에 못 미친 성과와 더 높아진 경쟁의 벽

 

카자흐스탄의 카라바탄 복합 발전소와 알마티 순환도로 건설, 우즈베키스탄의 수르길 가스전 개발과 나보이 복합화력발전소, 투르크메니스탄의 키얀리 가스화학 플랜트 분야에서 성공적인 사업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플랜트와 인프라 부문 대규모 투자를 포함하여 한국은 중앙아시아에 현재까지 약 67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나 이 규모는 한국의 글로벌 투자 누적액(8천억 달러 이상) 가운데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역대 정부가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것과 비교하면, 실제 투자 규모는 기대에 비해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의 대중앙아 투자는 고유가 시기였던 2006~2012년 사이에 확대되었으나,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는 정체되었다. 또한 한국의 중앙아시아 직접투자는 카자흐스탄(75%)과 우즈베키스탄(22%)에 집중되어 있으며, 키르기스스탄(2%), 타지키스탄(1% 미만), 투르크메니스탄(1% 미만)에는 상대적으로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 1] 한국과 중앙아시아 교역 추세 (단위: 백만 달러)

자료: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해외투자통계 (2025년은 10월 말 기준)


코로나19 위기와 러-우 전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의 활동이 다소 위축된 가운데,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중동 국가들의 진출이 확대되면서 향후 한국이 직면해야 할 경쟁환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교역은 전반적으로 증가세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투자와 마찬가지로 한국 연간 총 교역 규모에서 그 비중은 약 0.8%에 불과하며, 교역 구조 역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편중되어 있다. 2024년 기준 교역 비중은 카자흐스탄이 약 65%, 우즈베키스탄이 약 25%, 두 국가가 약 90%를 차지한다. 한국의 중앙아 경유 대러 우회 수출이 증가하면서 키르기스스탄의 교역 비중이 10%로 상승했지만,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비중은 여전히 1% 미만이다. 또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원유와 우라늄을 수입하는 카자흐스탄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에게서는 수입의 증대가 거의 없어 절대적 무역 흑자를 계속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원과 공산품을 교환하는 전통적 구조를 벗어나고 상호 호혜적 교역 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림 2] 한국의 대중앙아 수출과 대중앙아 수입 (단위: 천달러)

자료: 한국무역협회 K-Stat (2025년은 10월 말 기준)

 

한국은 카자흐스탄에서 망기스타우 유전 개발 사업과 발하쉬 발전 사업 등이 실패로 귀결되면서, 기업들 사이에서 중앙아시아 투자에 대한 리스크 인식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와 함께 중소 규모의 건설과 제조업 분야에서도 불투명한 행정절차와 계약 이행의 불확실성 등으로 애로를 겪는 경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인식하며, 지역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중앙아시아 국가의 국민들 역시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우호감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위기라는 공통의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는 기존 협력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협력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 전쟁 이후 중앙아시아 지정학의 변화와 한국의 시사점

 

-우 전쟁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권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서방 및 역외 국가의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도 중앙아시아를 러시아 영향권으로만 보는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 러-우 전쟁 이후 중앙아시아의 지정학 변화에 민감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구소련 공화국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안보 위협에 대한 인식은 크게 증폭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기적으로 중앙아시아가 러시아에 대한 구조적 의존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러시아의 지역 내 영향력은 일정 부분 약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따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정·경제적 안보를 헤징하기 위해 유럽은 물론 인도, 터키, 이란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접 지역 강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다방향 외교 전략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기존의 일대일로를 넘어 러시아의 약화 공백까지 흡수하면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전망이다. 그러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에서 토지법 개정 문제,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대중국 부채 증가, 현지인 고용 대신 중국인 대규모 투입 등으로 인해 반중 정서 역시 강화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특히 건설과 제조업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분야까지 중국 기업들의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대중국 의존 심화에 대한 경계심이 현지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부담 없고 기술력을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한국이라는 전략이 통할 수 있는 시점이다.


EU의 개입도 눈에 띈다. -우 전쟁 이후 EU는 에너지 탈러시아화와 핵심 광물 공급망 안정화를 목표로 중앙아시아와의 협의체를 정상급으로 격상했다. 2022년과 2023년 두 차례 정상 회동을 거쳐, 20254월 사마르칸트에서 제1EU-중앙아시아 공식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특히 한국이 주목해야 할 것은 러시아를 우회해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트랜스카스피해 국제운송루트(TITR)’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TITR의 활성화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물류 허브 기능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현지 시장에 진출하고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인도 역시 2022년부터 인도-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물류와 광물·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인도는 국제 남북운송회랑(INSTC)’ 참여를 통해 인도 뭄바이에서 이란의 반다르아바스 항, 카스피해를 거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연결되는 복합운송회랑 구축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파키스탄을 우회하기 위해 이란의 차바하르 항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으며, 이 항구는 인도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전략적 해상 교두보의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은 인도라는 거대 시장을 중앙아시아 그리고 나아가 러시아와 연계하는 협력 구조를 모색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며, 명실상부 신북방과 신남방의 통합적 유라시아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중앙아시아와 강한 문화·언어적 유대를 가진 튀르키예는 2021년 기존의 튀르크어 사용 국가 협의회(Turkic Council)’튀르크 국가 기구(OTS)’로 개편하고 중앙아시아와 전면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중간회랑(Middle Corridor)’의 서쪽 종착지로서 중앙아시아와의 연결성 강화에 힘쓰면 한편, 건설 및 인프라 프로젝트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중국 건설기업에 밀리는 한국 건설기업들은 한국의 고급 기술력과 튀르키예 건설기업의 현지 적응력 및 네트워크를 결합하는 협력 모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중동 국가들의 중앙아시아 진출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20237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개최된 제1걸프협력회의(GCC)-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2023-2027 공동행동계획이 채택되며 협력이 제도화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UAE GCC 주요국들은 중앙아시아에 상당한 규모의 개발 원조를 제공하며 소프트파워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중동 국가들은 에너지 및 신재생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카타르는 우즈베키스탄의 가스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며, UAE는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에서 대규모 태양광 및 수력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특히 사우디 개발 기금(SFD)’을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인프라 및 사회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차관 및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202311‘2030 세계 박람회개최국 투표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외교적 성과도 거두었다.


한국은 제조업과 IT 분야에서의 기술력과 사업 경험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동 국가는 막대한 자본력과 에너지 산업 경험이라는 비교 우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향후 중앙아시아에서는 중동의 자본력과 한국의 기술력 및 경험을 결합한 협력 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시티 및 도시 인프라 건설, 관개 시스템 개발, 농산물 공급망 구축, 병원 건설 및 디지털화 등에서 상당한 협력 시너지가 기대된다.



※ 본 칼럼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기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필자의 개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으며, KF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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