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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전문가 칼럼] 제1차 한·중앙아 정상회의 평가와 향후 과제

  • 작성자 박정호
  • 등록일 2026.10.16

박정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


1. 제1차 한·중앙아 정상회의 개최 배경과 의미

 

2026년 9월 16일 서울에서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는 1992년 수교 이후 34년 만에 한·중앙아 관계의 격을 기존의 장관급에서 정상급으로 격상시켰던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22년 러·우 전쟁 발발 이후 국제정세의 대격변 속에서 주요국(중국·러시아·미국·EU·일본)은 물론 독일·이탈리아·인도·걸프 국가들까지 중앙아 5개국과 정상회의를 개최한 상황에서, 한국도 마침내 이 대열의 후발주자로 등장한 것이었다.

 

이번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는 2026년 한국이 주최한 유일한 다자 정상회의로, 외교 지평을 한반도·동북아를 넘어 유라시아 내륙으로 다변화하는 전략적 출발점이었다. 또한 전통적인 원조·개발협력 외교가 아니라, 러·우 전쟁과 미·중 경쟁, 트럼프 2기 거래주의로 세계가 효율성의 시대에서 경제안보의 시대로 넘어온 국면에서 공급망·에너지·연결성의 결절점으로 부상한 중앙아시아를 한국의 경제안보 공간으로 공식 편입한 ‘경제안보 정상회의’였다.

 

2. 경제안보 시대 중앙아시아의 부상과 핵심 동인

 

경제안보 시대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와 중요성은 다음의 세 가지 구조적 변동이 겹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 러·우 전쟁과 서방의 대러 제재는 러시아를 관통하던 북부 운송망을 차단하고 유라시아경제연합의 통합성을 흔들면서, 중앙아시아를 중국과 유럽을 잇는 대안 회랑이자 우회 생산기지로 변모시켰다. 둘째, 미·중 전략경쟁과 디리스킹은 서방에게는 중·러 주도의 자원 공급망에서 빠져나올 통로를 추구하게 만들어주었고, 중국에게는 미국의 강력한 관세 압박을 회피할 인접 생산거점을 찾게 되었는데, 유라시아의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중앙아시아였던 것이다. 셋째, 트럼프 2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거래주의 외교, 그리고 올해 초 이란 전쟁이 불러온 중동의 안보 및 에너지 위기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강제하게 되었고, 에너지 수급선 다변화와 핵심광물 확보를 모든 주요국의 최우선 과제로 대두시켰다.

 

최근 들어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의 주변부에서 심장부로 재평가되고 있다. 지경학적 측면에서 중앙아는 석유·가스라는 전통 에너지 자원과 우라늄·구리·리튬·희토류 등 핵심광물을 동시에 보유한 ‘이중 부존’ 지대이자, 러시아를 우회해 중국과 유럽을 잇는 중간회랑과 국제남북운송회랑이 교차하는 대안 회랑이다. 지정학적으로는 미국의 중·러 견제, 중국의 일대일로 루트 구축,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권 유지 등이 서로 맞부딪치는 ‘신(新)거대 게임’의 주요 무대로 변모하면서 주요국들이 앞다투어 중앙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향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 ‘C5+1’ 정상회의를 개최 및 제도화하고 있는 중이다.

 

3. ‘서울 선언’의 주요 내용과 전략적 함의

 

2026년 9월 16일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채택된 ‘서울 선언’은 중요한 전략적 함의를 담고 있다. 이는 지난 34년 동안의 상호간 우정과 신뢰의 바탕 위에서 상생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미래 30년’을 함께 열어 나가겠다는 공동의 선언이자 약속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울 선언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어서, 경제안보와 공급망 재편 시기 한국 정부가 중앙아시아를 어떤 공간으로 규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협력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급 차원에서 명문화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여기서 서울 선언의 주요 내용과 전략적 함의를 크게 다섯 가지 논점으로 제시해 볼 수 있다.

 

첫째, 한·중앙아 협력 관계의 성격을 ‘원조·개발협력’에서 ‘경제안보 파트너십’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서울 선언이 핵심 광물을 채굴·반출이 아닌 탐사·제련·소재·완제품의 전주기 협력, 즉 ‘호혜적 가치사슬 구축’으로 설정하고, 산업·공급망 협력 MOU와 산업장관 협의체를 그 실행 장치로 두었다. 이를 통해 볼 때, 중앙아시아를 더 이상 단순한 지원 대상국이 아니라 한국 공급망 다변화의 전략적 공간으로 규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세계화 시대에서 경제안보 시대로의 이행, 즉 국제질서 재편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대응으로, 자원 의존성 탈피와 산업 다각화라는 중앙아의 협력 수요와 정확히 맞물리는 것이다.

 

둘째, 후발 주자의 약점을 ‘파트너십의 제도화’로 상쇄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중국·러시아·미국·EU·일본 등이 개최한 ‘C5+1’ 정상회의 경쟁 구도에 가장 늦게 진입한 국가인데, 선행주자들과 투자 규모나 군사 안보적 지원책 등으로 경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 선언을 통해 정상회의 2년 주기 정례화와 2028년 아스타나 정상회의 개최를 명문화하고, 정상회의가 부재한 해에 외교장관급 협력포럼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아울러 산업 장관 협의체 신설 및 차관급 회의 개최, 중앙아 5개국에 코리아 데스크 설치라는 다층적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이는 출발 시점부터 선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제도화 수준을 벤치마킹해 협력의 지속성은 물론이고, 플랫폼의 다변화 자체를 차별화 전략으로 삼았다는 의미다.

 

셋째, 한국형 차별화 포인트를 정상간 합의 문서의 언어로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4대 비전 가운데 ‘혁신과 번영’은 AI·과학기술 파트너십과 기후·에너지·환경 이니셔티브로, ‘사람과 신뢰를 통한 연결’은 내년 고려인 정착 90주년 공동 기념 행사 개최와 인적 교류 확대로 각각 구체화되었다. 물량 공세를 앞세운 중국, 안보적 연계와 역사적·지리적 접근성을 보유한 러시아, 핵심광물 확보에 초점을 맞춘 미국, 규범적 가치를 강조한 EU, 대규모 투자 약속에 기반한 일본 등과는 달리, 한국은 패권 추구의 역사가 부재한 신뢰할 수 있는 중립적 파트너로서 우리만의 비교우위 전략 자산(발전 경험과 첨단 기술, 30만 고려인과 한류)으로 승부하겠다는 국가 브랜드 전략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넷째, 경제협력체를 넘어 ‘평화와 안정을 위한 동행’을 기치로 내걸면서 포괄적 안보 파트너십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에 대한 지지, 중앙아 비핵지대의 국제적 비확산 체제에 대한 기여 평가, 테러·초국가범죄·사이버 위협 대응 협력, 수자원·에너지·식량 등 인간안보 의제의 포함은 안보가 더 이상 군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공유한 결과다. 한국으로서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유라시아 대륙에서 새로운 우호국을 확보하고, 중앙아시아로서는 강대국 진영에 편입되지 않는 ‘제3의 길’을 개척하는데 필요한 동반자를 얻은 셈이다.

 

다섯째, 양자와 다자 협력의 병행 추진이라는 ‘이중 구조’를 기반으로 중앙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아키텍처의 틀을 세웠다는 점이다. 다자 협력 선언과 동시에 양자 협력(카자흐와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격상, 투르크멘과의 투자보장협정 체결, 타지크와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 수립 등)과 관련하여 100여건이 넘는 문건이 체결되었다. 특히 이것은 다자 포맷이 양자 관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다만 이 병행 구조가 양자의 단순 합계에 머물지 않으려면, 중앙아 다섯 나라를 기능별로 분업화시키는 노력과 함께 지역 공공재(수자원 관리·물류망·전력망 등) 설계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4. 향후 과제

 

서울 선언의 전략적 함의는 이미 완성된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상생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방향의 설정에 있다. 따라서 2026년 서울 선언에서 합의된 협력 비전이 2028년 아스타나 정상회의에서 사업의 이행률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인 후속 작업 진행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향후 과제의 우선적 출발점은 성과 평가의 내실화와 협력 거버넌스의 강화에 있다. 성과는 새로 서명한 양해각서 건수가 아니라 기존 합의가 타당성 조사, 부지 확보, 금융 종결, 착공 등의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이행률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외교장관급 협력포럼의 점검 기능을 이 지표에 집중시키고, 다년도 예산과 전담 인력을 갖춘 집행 기구로 협력포럼 사무국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실질 협력 과제는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핵심광물 전주기 협력의 가시적 성과 창출과 코리아 데스크의 조기 가동을 통한 비즈니스 애로 해소, 그리고 중앙아 5개국을 하나의 분업 구조로 엮는 역할 설계가 필요하다. 지식 공유 측면에서는 한·중앙아 싱크탱크 네트워크를 활용해 고위급 회담의 의제를 사전에 설계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정책 지원 기능을 제도화해야 한다. 사람 측면에서는 내년 고려인 정착 90주년을 인적 교류 제도화의 계기로 삼고, 전문인력 비자·공동 학위·자격 상호인정으로 기술 파트너십의 통로를 넓혀 나가야 한다.

 

천 년 전 실크로드를 오간 것은 비단과 향료였지만, 오늘 한국이 이 길에 실어 보내야 할 것은 약속을 지키는 신뢰와 원료를 부가가치로 바꾸는 경험, 그리고 세대를 잇는 인적 교류다. 이를 통해 경제안보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기 한국은 중앙아와 함께 상생협력의 길을 개척하는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기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필자의 개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으며, KF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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