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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전문가 칼럼]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기대와 제언

  • 작성자 엄구호
  • 등록일 2026.09.07

·중앙아시아 정상회의: 기대와 제언

 

엄구호(한양대 국제대학원 석학교수)

 

오는 916~17일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한국은 1992년 수교 이래 역대 정부에 걸쳐 중앙아시아를 북방외교의 전략 파트너로 설정하고 협력을 강화해 왔으며, 이에 따라 양측 간 협력 거버넌스 역시 점차 고위급화·제도화되는 경로를 밟아왔다. 구체적으로 2007년 외교부 주최로 출범한 -중앙아 협력포럼은 차관급 회의로 연례화하였고, 2017년에는 포럼의 지속적·안정적 운영을 뒷바침하기 위해 한국국제교류재단(KF) 내에 -중앙아협력포럼사무국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제도화는 2020년 제13차 포럼을 기점으로 공식 외교장관급 정례 다자협의체로의 격상이라는 결실을 맺었고, 이번 정상급 여정의 최고 단계로서 최초로 개최되는 것이다.

 

러우전쟁이후 중앙아의 전략적 가치 상승

러우전쟁 이후 중앙아의 전략적 위상은 중국·러시아뿐만 아니라 서방 국가들에게도 급격히 높아졌다. 미국, EU, 일본, 독일 등이 2023년부터 C5+1 정상회담을 연이어 개최하고 있다. SCO 회원국인 러시아, 중국, 인도도 SCO와 별도의 양자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있다. 정상회담 개최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은 후발주자인 것이다.

중앙아의 전략적 가치가 이처럼 상승한 배경에는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지정학적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의 진영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중앙아의 핵심 광물이 재조명 받고 있다. 중앙아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신재생에너지에 필요한 리튬, 희토류, 우라늄, 티타늄, 크롬 등의 매장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와 러시아 제재 여파 속에서 미국, EU, 한국, 일본 등 주요국이 자원 수입처를 다변화에 나서면서, 중앙아는 최우선 협력국으로 부상했다.

둘째, '중앙회랑(Middle Corridor)' 물류 경로가 급부상하고 있다. 기존 유라시아 물류의 중심이었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북부 회랑)가 전쟁과 제재로 기능이 위축되면서,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카스피해 횡단 국제수송로(TITR)'가 핵심 대체 경로로 떠올랐다.

셋째, 러우전쟁 이후 중앙아 국가들 스스로가 러시아 중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실익 중심의 다변화 외교(multi-vector diplomacy)를 강화하면서, 서방과의 접면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앙아 국가들은 인구 증가율이 높고 평균 연령이 낮아 내수 시장 잠재력이 크고, 산업다각화 및 산업고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제조업은 물론 디지털·신재생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신규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자원의 전략적 가치와 성장하는 내수시장이 결합되면서, 중앙아는 단순한 자원 공급지를 넘어 종합적인 경제협력 파트너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각국의 C5+1 정상회담에서 핵심광물 협력, 디지털·AI 협력, 중앙회랑을 통한 물류협력을 핵심 의제로 다루어 왔으며, 협력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사회 분야 협력 역시 함께 논의되어 왔다. 이번 한-중앙아 정상회담의 의제 역시 큰 틀에서는 기존 선진국들의 C5+1 의제와 유사한 궤를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관건은 의제의 유사성이 아니라, 한국의 비교우위에 부합하는 차별화된 의제를 개발하고, 이를 뒷받침할 실효성 있는 이행 메커니즘에 합의하는 데 있다.

 

-중앙아 협력관계의 질적 전환 기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역대 정부는 새로운 시장 개척과 천연자원 확보라는, 주로 경제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대()중앙아시아 외교를 펼쳐왔다. 그러나 협력의 잠재력에 견주어 볼 때, 실질적으로 체감되는 협력 수준은 여전히 낮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의 대중앙아 누적투자액은 한국의 글로벌 해외투자 누적잔액의 약 0.8%, 교역액은 한국 총교역액의 0.7%대에 그치고 있어, 양국이 표방해 온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수사와 실제 경제협력의 밀도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인식하며, 이 지역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협력의 방향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이러한 노력에 화답하듯, 중앙아시아 각국 국민들 역시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우호도 역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실질 협력의 낮은 밀도에도 불구하고, 향후 협력 확대를 위한 견고한 인식적 토대가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4차 산업혁명과 지정학 위기라는 공통의 도전에 직면한 지금한국과 중앙아시아는 기존 협력 방식의 구조적 한계를 인식하고 협력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는 바로 이 공감대를 실질적 협력 수준의 도약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의제 개발이 아니라, 양국의 협력을 실질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면서 동시에 양측 모두가 상호호혜적 관점에서 지속 추진할 수 있는 협력의 기반, 거버넌스, 그리고 핵심 의제에 합의하는 일이다.

 

정상회의의 제도화와 한-중앙아 협력 거버넌스 체계화

이번 정상회의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를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우선, 2년 주기의 정상회의 개최를 명문화함으로써 기존의 연례 외교장관급 회의와 격년 정상회의를 결합한 이원적 구조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협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중앙아 정상회의의 정례화가 합의된다면, 이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되는 법적·정치적 구속력을 확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과 중앙아 5개국이 순차적으로 주최하는 순회 개최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협력의 상호성 역시 제도적으로 담보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정상회의의 지속가능성이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는 별도의 정상회의 사무국을 신설하기보다, 기존에 운영 중인 '-중앙아 협력포럼 사무국'의 기능을 내실화하는 편이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이 사무국이 정상회의, 외교장관급 회의, 그리고 2023년 출범한 '-중앙아 국회의장회의'의 준비를 통합적으로 관장하도록 함으로써, 신설 기구에 따르는 예산·인력 부담 없이도 협력 채널 간 정합성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중앙아 협력포럼 사무국2024년부터 중앙아 5개국 전략연구소와 공동 개최해 온 -중앙아 싱크탱크 포럼을 정상회의 및 외교장관 회의의 의제 개발과 사전 협의의 장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상 간 합의가 즉흥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사전에 충분히 숙성된 의제에 기반한 내실 있는 결과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중앙아 협력포럼 사무국기능 확대를 통한 정상회의 합의 내용의 이행 메커니즘 점검

역대 정부는 여러 이름의 대중앙아 이니셔티브를 발표해 왔고, 중앙아 순방 정상회의에서도 다수의 합의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합의가 성공적으로 이행되지 못한 사례가 반복되어 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중앙아 관계의 질적 전환의 계기가 되려면, 합의사항의 실효적 이행 메커니즘 구축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중앙아 협력포럼 사무국'의 기능을 확대하여 정상회의 합의사항의 이행 점검 기능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원·공급망, 물류·인프라, 디지털·AI, 보건·인적교류 등 핵심 협력 분야별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별로 성과 지표를 설정하여 그 이행 현황을 담은 연례 점검보고서를 발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합의 이행의 실질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 지원과 민간 부문의 현장 애로 해결 지원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대규모 프로젝트의 조기 착공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칭) '-중앙아 공동 경제협력기금'을 조성하고, 수출입은행 및 산업은행과의 연계를 통해 신속하고 일관된 금융지원 체계를 가동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책금융과 ODA 간의 연계 역시 보다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무역협회·상공회의소·KOTRA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 점검단을 운영하여 한-중앙아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현지 진출 기업의 애로사항을 상시적으로 수렴·제안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현지 공관과 KOTRA를 중심으로, 통관 지연·인허가 지연·법적 불확실성 등 한국 기업이 실제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중앙아 각국 정부에 직접 건의하고 해결하는 공식 '패스트트랙' 채널의 신설 방안을 각국 정부와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전문가 양성 교육 협력이 최우선 과제

교육 협력은 한국이 중국·러시아는 물론 미국·유럽과도 뚜렷이 차별화되는 협력을 펼칠 수 있는 분야다. 한국은 교육 투자를 기반으로 단기간에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룬 대표적 국가이며, 중앙아 국가들이 탈자원화·산업다각화, 특히 디지털 전환을 이루어낼 인재를 시급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이 분야에서 명확한 비교우위를 갖는다.

-중앙아 협력에서 전문가 양성 교육협력은 단발성 자원개발이나 프로젝트 수주를 넘어, 협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비즈니스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낮춰주는 가장 확실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학 차원에서는 우선 중앙아에서 수요가 가장 높은 의과·이공계 분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대학과 현지 대학 간 2+2 공동학위제를 확대하고, 타슈켄트 인하대와 같은 현지 분교 개설을 늘려나가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KOICA 프로그램과 KSP(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를 통해 중앙아 정책 입안자를 대상으로 한국의 산업표준, 규제체계, 투자유치제도 등에 관한 정책전문가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KIST 등 국책연구기관과 현지 연구소 간 공동연구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연구협력이 곧 인재양성으로 이어지는 연계 효과를 강화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도 중앙아 기술인력 양성에 기여할 여지가 크다. 기업이 대형 인프라·플랜트 사업을 수주할 경우, 그 현장에 KOICA·EDCF 자금을 활용한 직업훈련센터를 건립하여 건설·운영에 필요한 실무인력을 현지에서 직접 양성할 수 있다. 또한 기업 본사의 교육프로그램에 현지 기술인력을 초청해 실습 위주의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 역시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프라 투자와 달리, 교육협력은 대규모 자본 없이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교육·연구 협력은 장기적으로 중앙아 내에 한국을 이해하고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 계층을 형성하고, 양국 간 제도적 유사성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대중앙아 외교의 가장 견고한 전략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은 중앙아에 가장 신뢰받을 수 있는 파트너

중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중국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 지역으로 편입되면서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 또한 심화되어 왔다. 그러나 러우전쟁 이후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중앙아의 핵심광물과 물류 경로에 대한 서방의 관심이 크게 증대되었고, 이에 발맞춰 중앙아 국가들 역시 서방과의 협력 폭을 확대하는 다변화 외교(multi-vector diplomacy)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 변화 속에서, 중앙아는 전통적으로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이미지를 견지해 왔으며,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을 특정 진영에 편중되지 않으면서도 지정학적 의존의 위험이 낮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바로 이러한 인식적 자산을 실질적 협력으로 전환시켜, 한국과 중앙아가 상호 공동번영의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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