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앙아시아 경제협력의 평가와 과제
조영관(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1. 중앙아시아 경제 현황과 성장 잠재력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 간 협력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실질적인 경제협력 확대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협력을 점검하고 변화하는 중앙아시아의 경제·산업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향후 한-중앙아시아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고자 한다.
안정적인 경제성장 지속
중앙아시아는 최근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와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젊고 증가하는 인구,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원유, 천연가스, 우라늄, 구리, 크롬 등 다양한 에너지·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자원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산업 다변화와 경제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제조업과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은 경제 개방과 산업구조 개혁을 통해 외국인 투자 유치와 제조업 발전에 힘쓰고 있다. 키르기즈와 타지키스탄도 IT 산업 등 새로운 성장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새로운 소비시장으로서도 성장하고 있다. 높은 인구 증가율과 낮은 평균 연령은 노동력 공급 확대뿐만 아니라 내수시장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다. 또한 EU, 중국, 중동, 동북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면서 국제경제로의 편입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도 이러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전략자원 공급지로서 중요성 증대
중앙아시아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핵심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지역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5개국은 에너지 자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략광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부 광물은 세계적인 생산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세계 주요 우라늄 생산국이며 크롬, 구리, 아연 등 다양한 금속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금, 우라늄, 구리 등이 풍부하고, 키르기즈공화국은 금을 중심으로 광산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타지키스탄도 안티몬과 은 등 다양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앙아시아는 단순한 원자재 공급지역을 넘어 한국과 같은 제조업 중심 국가의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유럽과 미국 등 주요국도 중앙아시아와 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 한-중앙아시아 경제협력의 현황과 평가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경제협력은 교역, 투자, 에너지, 제조업,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해 왔다. 교역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기계류, 화학제품 등을 수출하고 중앙아시아로부터 원유, 광물, 섬유제품 등을 수입하고 있다.
앞으로 양측의 경제협력은 단순한 상품 교역을 넘어 생산 네트워크 구축과 산업협력 중심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제조업, 에너지, 금융, ICT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왔다. 섬유, 자동차, 에너지 플랜트 등 기존의 협력 성과를 이어가는 동시에 디지털, AI 등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기존 산업협력의 지속과 고도화
한국과 중앙아시아 경제협력의 대표적인 성과는 우즈베키스탄의 섬유와 자동차 산업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부터 우즈베키스탄 섬유산업에 진출해 현지 면방직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신동에너콤, 대신메가텍스, 대우면방직,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현지 생산 기반을 구축하며 우즈베키스탄 섬유산업의 성장에 참여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1996년 대우자동차가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공동으로 안디잔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면서 중앙아시아 최초의 자동차 생산 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기아자동차도 현지 생산에 참여하면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우즈베키스탄 제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진출이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전기자동차를 중심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국 기업들도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플랜트 역시 대표적인 산업협력 분야다.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 자원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협력 모델을 구축했다.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프로젝트는 약 36억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생산된 천연가스를 활용해 고밀도폴리에틸렌(HDPE)과 폴리프로필렌(PP)을 생산·수출하는 구조다. 투르크메니스탄 키얀리 가스화학 플랜트 역시 약 30억 달러 규모로 현대엔지니어링, 현대건설, LG상사 등이 참여했다. 앞으로도 중앙아시아에서 추진되는 석유화학 산업 등 에너지 자원의 고부가가치화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협력 분야: 디지털과 스마트시티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디지털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디지털 우즈베키스탄 2030」 전략을 통해 전자정부,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농업, IT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카자흐스탄도 인공지능을 국가 발전의 핵심 분야로 설정하고 인공지능 및 디지털 개발부를 설립하는 한편 AI 교육 확대와 디지털 국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한국 정부와 기업도 중앙아시아와 AI·ICT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대규모 신도시 건설도 주목할 만하다. 우즈베키스탄은 타슈켄트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해 IT·교육·의료 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며, 카자흐스탄은 알마티 인근에 2050년까지 880㎢ 규모의 알라타우 신도시를 조성하고 있다. 스마트 교통체계, 친환경 에너지, 첨단 의료·교육시설을 갖춘 미래형 도시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도시개발 사업은 한국 기업이 스마트시티에 필요한 IT, 건설, 교통, 에너지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한국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부터 리튬, 몰리브덴, 티타늄, 크롬 등의 광물을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한국 기업들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 등에서 추진한 광물 생산 사업은 대부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카자흐스탄의 아약코잔 동광과 질란디 동광, 우즈베키스탄의 자파드노 금광, 키르기즈의 솔튼사르 금광 등은 경제성 부족으로 사업이 초기 단계에서 중단된 바 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보다 체계적인 광물 공급망 협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민간기관 간 협력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한국광해광업공단, 해외자원개발협회 등 관련 기관과 중앙아시아 기관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광물 분야 연구기관 간 협력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석유공사 및 한국가스공사의 연구기관과 중앙아시아 공공연구기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탐사·개발·생산 관련 연구와 기술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
2019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협력으로 설립된 ‘한-우즈벡 희소금속센터’도 중요한 협력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센터를 중앙아시아 각국에 설립하고 텅스텐, 몰리브덴 등 금속의 제련기술 고도화를 공동으로 추진한다면 중앙아시아의 금속가공 산업 발전과 한국의 희소금속 공급망 구축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중앙아시아 경제협력의 새로운 방향
향후 한국의 대중앙아시아 협력에서는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중앙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중앙아시아는 더 이상 유라시아의 변방이나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볼 수 없다.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세계 주요국이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적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물류 허브로서 각국의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둘째, 상호 이익에 기반한 산업협력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산업발전 수요를 고려하면서 양측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자동차와 에너지 플랜트 등 기존에 성과를 거둔 분야의 협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디지털과 AI 등 미래산업에 보다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데이터센터 등 IT 인프라에 공동 투자하고 공동 AI 연구센터를 설립해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의 협력도 가능하다.
광물 공급망 역시 상호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단순히 중앙아시아의 광물을 한국으로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에 광물 가공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한국의 공급망과 연결한다면 중앙아시아의 산업 발전과 한국의 공급망 안정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다.
셋째, 인적교류의 확대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KOICA 등을 활용한 기술교육을 확대하고, 국내 중앙아시아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기술교육도 강화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과 청년층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앙아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젊은 인구, 전략적 위치를 갖춘 신흥시장으로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파트너가 될 잠재력이 크다. 이제 한국은 중앙아시아를 단순한 자원 공급지가 아니라 산업·기술·공급망·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갈 장기적인 전략 파트너로 재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상호 이익에 기반한 산업협력과 인적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기후·환경·전염병·빈곤·여성과 같은 글로벌 공동과제에 함께 대응하는 것도 한-중앙아시아 협력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