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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전문가 칼럼 - 의료·보건] 중앙아시아 보건협력: 단발성 프로젝트를 넘어 시스템으로

  • 작성자 손혜령
  • 등록일 2026.04.23

중앙아시아 보건협력: 단발성 프로젝트를 넘어 시스템으로


손혜령

칠곡경북대학교병원

러시아&CIS 담당

 


1. 현장이 가르쳐준 보건협력의 원칙


지난 10년간 중앙아시아 5개국과 보건 협력을 이어오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사람의 삶과 닿아있는 의료, 보건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오랜 시간의 축적과 노력, 무엇보다 중앙아시아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가 쌓여야 시스템이 되고, 그 시스템이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는 것이다.

특히, 단순한 자원이나 기술만 필요한 것이 아닌, 종교적, 지리적,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대한 특수성과 구소련권 의료체계를 기반으로 형성된 보건 시스템과 관료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현장의 의료진, 공무원, 환자의 목소리를 듣고 기존의 시스템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의 시스템을 중앙아시아에 소개하거나 정착시킬 때는 이런 물음을 가지곤 한다. “한국 시스템은 한국에 맞지만, 과연 이곳에도 맞을까?”, “우리의 의견이 반드시 옳은가?”

 

2. 중앙아시아 재활의학 협력의 시스템화 과정


2.1. 정부 간 협력과 공공 파트너십의 중요성

중앙아시아에서의 보건협력은 한 기관이나 개인의 역량만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특히 관료주의적 성격이 강한 국립기관들은 국가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약해질 경우 사업의 동력이 빠르게 약화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보건협력은 단기간 내 가시적인 수익이나 성과를 만들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정부 간 의지와 공공기관의 지속적인 지원, 의료기관과 교육기관 간 협력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사업이 구조화되고 현지에 정착될 수 있다.

중앙아시아 내 재활의학 협력사업은 2019카자흐스탄 내 한국형 재활의학과 정착화 사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해당 사업은 한국국제교류재단(KF), 경북대학교병원, 카자흐스탄 국립의과대학 간 3MOU를 기반으로 추진되었으며, 양국 정상순방 계기에 논의된 협력과제 중 하나였다. 이후 양국 보건당국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사업이 이어질 수 있었고, 특히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장기적 지원은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공공성이 강한 보건협력 사업을 수행하며 느낀 점은, 단순 기관 간 협력만으로는 장기적인 동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중장기적 제도 변화와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사업일수록 정상순방과 같은 정부 간 공식 의제에 포함되어 추진될 경우 사업의 연속성과 정책적 우선순위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상징성을 넘어 현지 정부와 기관의 관심과 참여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했다.

이를 통해 교육 분야에서는 한국형 재활의학 커리큘럼의 법제화가 추진되었고, 의료 분야에서는 재활치료 프로토콜 구축, 보건 분야에서는 국가보험체계 내 재활의학 도입 등 단순한 의료기술 이전을 넘어 시스템 차원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2.2. 기존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존중

카자흐스탄의 보건의료체계는 여전히 구소련 시기의 의료시스템 영향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사나토리움(Sanatorium)’ 중심의 재활 개념은 치료 중심이라기보다 예방과 회복, 심리적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었으며, 마사지, 머드팩, 소금호흡치료 등 소비에트 시절부터 이어져 온 다양한 치료법이 현장에 남아 있었다.

초기에는 이러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현지 의료진들과 적지 않은 의견 차이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재활의학 교육 커리큘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현지 교수진들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의료환경과 인력 구조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실제로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기존의 전문인력과 장비, 보험체계 등이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한국의 시스템을 단기간 내 동일한 형태로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것은, 한국의 시스템을 가르치는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중앙아시아 의료가 왜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소비에트 시절부터 이어져 온 사나토리움 중심의 재활 개념은 단순히 낡은 시스템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의료철학과 생활문화가 축적된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후 기존 사나토리움 체계의 장점을 일부 반영하고, 카자흐스탄 의료진과 환자 환경에 맞춘 교육 커리큘럼과 재활의료체계를 함께 설계해 나갈 수 있었다. 또한 국가보험체계 내 다빈도 질환 중심의 재활치료 모델을 구축하며 보다 현실적인 형태의 현지화가 가능해졌다.

 

3. 중앙아시아 의료현장의 수요 변화


3.1. 중앙아시아 보건정책의 공통 방향

2026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1차 보건의료(PHC) 강화, 의료 접근성 확대, 예방 중심 의료체계 구축, 디지털헬스 확대를 중심으로 보건의료체계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단순 의료장비 도입보다 병원 운영 시스템, 의료인력 교육, 간호서비스, 디지털 기반 진료체계 등 시스템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카자흐스탄은 2026년 약 27,300억 텡게(86,547억 원) 규모의 보건예산을 편성하였으며, 협진 시스템 개선과 간호사의 역할 확대를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약 68천억 숨(8,432억 원) 규모의 보건예산을 기반으로 QR 기반 전자의뢰 시스템 도입 등 의료 디지털화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1,318억 마나트(563,195억 원) 규모의 국가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사회·보건 분야에 배정하고 있으며, 비감염성질환 관리와 다학제 진료체계 구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약 50억 소모니(8,056억 원) 규모의 보건예산과 함께 EU·GIZ 지원 아래 가정의학 및 지속적 의료교육 중심의 BaSIC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키르기스스탄 역시 약 107억 솜(1,831) 규모의 의무의료보험기금(FOMS)을 기반으로 PHC 중심 의료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WHO, EU, GIZ 등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예방의학 확대, 만성질환 관리, 원격의료 도입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의료기관이 보유한 병원 운영, 교육, 디지털헬스 경험과도 높은 연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3.2. 자국 중심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최근 제약·바이오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양국은 의약품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생산 확대와 의약품 안보 강화를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글로벌 제약기업과 협력하여 대규모 생산시설 및 바이오의약품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총 1,730억 텡게 규모의 투자로 신규 제약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Nobel İlaç, Sinopharm, Sinovac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하여 항암제, 백신, 당뇨병 치료제 등 356종 의약품의 현지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원료의약품(API) 및 바이오의약품 생산 기반 구축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안디잔과 시르다리야 지역을 중심으로 총 4 억 달러 규모의 제약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혁신 제약 클러스터인 Tashkent Pharma Park를 기반으로 ‘BioPharma City’ 조성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기술이전, 임상시험, EU GMP WHO 인증 획득 비용 지원 등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의료기관과 제약산업이 병원 운영, 의료인력 교육, 디지털헬스, 제약·바이오 분야를 연계한 통합적 협력 모델을 기반으로 중앙아시아 시장에 보다 체계적으로 진출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4. 이제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 시간

중앙아시아 보건협력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업을 수행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가에 달려있다. 그동안 의료봉사, 장비지원, 의료연수, 나눔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기관의 적극적 활동 덕분에, 현재의 K-medical 이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이제는 이런 활동을 넘어 현지 의료체계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한국 의료산업의 현지화를 위한 기반을 만들 시기이다.

중앙아시아는 단기간의 프로젝트보다 병원운영, 의료서비스 접근성 강화, 의료인력 양성, 디지털헬스, 제약·바이오 산업까지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협력 모델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짧은 기간 안에 의료보험, 의료인력 양성, 의료서비스의 디지털화 등을 동시에 이룬 경험을 가지고 있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중요한 협력 모델이 될 수 있다.



※ 본 칼럼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기고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의 개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으며, KF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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