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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문가 칼럼 - 지방협력] 한–중앙아 지방협력: K-개발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

  • 작성자 하태역
  • 등록일 2025.08.22

한–중앙아 지방협력: K-개발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


중앙아시아, 상생형 파트너십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 무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하태역 국제관계지원실장



■ 인구 역설과 협력의 필요성

 한국 농촌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국 농가의 42%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으며, 소멸위험 지역도 전국 시군구의 40%를 넘어섰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총인구는 5,122만 명에서 연간 1만여 명씩 감소하고 있고, 도시화율 92.1%에도 불구하고 지방 소멸은 가속화되고 있다.


 반면 중앙아시아는 완전히 다른 현실에 직면해 있다. 총인구 8,070만 명, 평균 연령 27.6세의 젊은 대륙이다. 우즈베키스탄만 해도 인구 3,700만 명 중 300만 명이 해외에서 일하며 매년 200억 달러를 본국으로 송금한다. 지난 30년간 중앙아시아 도시인구는 16% 급증했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주로 러시아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 '인구 역설'은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한국 지방의 절실한 인력 수요와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인적 자원이 맞닿는 지점에서, 기존의 일방적 원조를 넘어서는 혁신적 상생 모델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아시아는 한국이 추진해야 하는 K-개발협력 모델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대표 무대다. 내년 개최 예정인 사상 최초의 한-중앙아 5개국 정상회의는 이러한 비전을 제도화할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 왜 중앙아시아인가: K-개발협력 대표 무대의 근거

 첫째, 발전 단계의 반면교사이다. 한국은 1960년대 농업국에서 출발하여 압축 성장을 통해 산업화를 달성했다. 이는 현재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동시에 겪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카자흐스탄의 도시화율 57.3%, 우즈베키스탄 50.5%는 한국의 1970년대와 유사한 수준이다. 한국의 압축 성장 경험이야말로 중앙아시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실용적 참조 모델인 것이다.


 둘째, 상호 보완성이다. 한국은 기술과 경험을, 중앙아시아는 젊은 인구와 풍부한 자원을 제공한다. 한국의 스마트시티 기술과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산업, 부산의 항만 노하우와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물류 허브가 결합될 때 진정한 시너지가 창출된다. 이는 아프리카에 대한 일방적 원조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적 협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호 의존적 성장 모델'이다.


 셋째, 지정학적 맥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앙아시아는 '신 그레이트 게임'(新 Great Game) 각축장이 되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 주재로 중국-중앙아 정상회의를 열며 일대일로를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2023년 첫 C5+1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유럽마저 'EU-중앙아시아'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어느 한 강대국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실용적 다변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모두 2023년 중국이 러시아를 제치고 최대 교역국이 되었지만, 러시아와의 안보 협력은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 틈새에서 패권적 의제를 강요하지 않는 한국형 K-개발협력의 차별적 경쟁력이 부각되는 것이다.



■ 왜 한국 지방정부인가: 현장 실행 주체의 필요성

 물론, 중앙아시아의 제도적 현실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모두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지방정부의 자율성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지방협력은 독자적 외교 영역이 아니라 중앙정부 외교를 보완하는 실행 플랫폼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한국 지방정부의 행위자적 역할이다. 산업단지 조성, 농업 현대화, 스마트시티 구축 같은 구체적 사업은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 선언만으로는 추진하기 어렵다. 부산의 항만 운영 경험, 대구의 섬유기계 기술, 세종시와 성남시의 스마트시티 노하우는 중앙정부가 대신할 수 없는 현장의 전문성과 실행력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가 직접 이익을 얻는 구조라는 점이다. 기존의 중앙정부 주도 ODA는 지방에게는 부담만 있을 뿐 직접적 이익이 없었다. 그러나 한-중앙아 지방협력은 부산 기업의 카스피해 진출, 대구 섬유산업의 해외 거점 확보, 농촌 지역의 인력난 해결 등 지방 자체의 현실적 이익과 직결된다. 이것이 한국형 K-개발협력이 다른 강대국 모델과 구별되는 가장 큰 강점이다.



■ 제도적 기반: 중앙정부간 포럼에서 지방협력 포럼까지, 그리고 정상회의로

 2007년 출범한 한-중앙아 협력포럼은 17년간 꾸준한 성과를 축적해왔다. 2017년 서울 상설 사무국 설치, 외교장관급 격상에 이어, 내년에는 수교 34년만에 처음으로 한-중앙아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 정상회의는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 다방면의 협력의 정점을 이루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2023년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 등 5개국 대사들과 공동으로 한-중앙아 지방협력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하였고, 외교부, 한국국제교류재단 등 관계기관의 적극적 협조로 2024년 서울에서 제1회 지방협력 포럼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다음 달 9월에는 카자흐스탄 투르키스탄에서 제2회 지방협력 포럼이 개최될 예정으로 이제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 협력의 장이 지방으로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제약을 고려할 때, 정상회의 합의 → 장관급 조정 → 지방 실행의 3단계 연계 구조를 명확히 제도화해야 한다. 정상회의에서 대원칙을 합의하고, 각국 관련 장관(차관)급에서 구체적 사업을 조정하며, 지방정부 차원에서 실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체계다. 이를 통해 지방협력이 중앙아시아의 중앙집권적 체제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 핵심 사업 모델: 상생의 구체적 설계

       1) 계절 근로자 순환 프로그램: 인력 교류의 혁신

 한국 농촌의 심각한 인력난과 중앙아시아 청년층의 일자리 수요를 연결하는 순환 시스템이다. 핵심은 단순 노동력 공급에서 그치지 않고 기술 습득과 재정착 효과를 통해 중앙아시아 농업 현대화에도 기여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의 농업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스마트팜, 과수원, 축산업 분야에서 수개월간 계절 근로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을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습득한 현대 농업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본국으로 가져가 농업 현대화의 씨앗이 되도록 한다. 전라남도, 경상북도 등 농업 중심 지역이 직접 파트너십을 맺어 연간 일정 수의 규모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협력 모델이다. 


     2) K-개발협력 상생 모델: 지방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중앙아시아는 K-개발협력 모델이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대표 무대다. 기존의 일방적 중앙정부 위주의 원조사업을 넘어 한국 지방이 개발협력의 주체가 되어 자체 경제 활성화와 국제협력을 동시에 달성하는 혁신 모델이다.


  •  부산시-카자흐스탄 악타우항 프로젝트: 대표적인 사례로 부산항의 물류 운영 노하우를 악타우항 컨테이너 터미널 현대화에 전수하는 동시에, 부산 기업들의 카스피해 물류 허브 진출 기회를 창출한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핵심 물류 거점으로서, 부산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  대구시-우즈베키스탄 섬유산업 클러스터: 대구의 섬유기계 기술을 우즈베키스탄 섬유산업 단지 조성에 제공하여, 침체된 대구 섬유산업의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6위 면화 생산국으로서 대구 기업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파트너다.


 이러한 실질적인 사례들은 한국 지방경제의 활력과 중앙아시아 산업 현대화를 동시에 이루는 쌍방향 상생 모델이며,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중앙아시아만의 독특한 협력 구조다.


     3) 스마트시티 기술 생태계: 미래지향적 연계

 세종시, 성남시 등 한국의 스마트시티 선도 지역과 아스타나, 타슈켄트 등 중앙아시아 주요 도시 간 자매결연을 통해 교통 관리, 에너지 효율, 폐기물 처리 등 도시 운영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한다. 이는 일방적 기술 제공이 아니라 상호 학습과 공동 혁신의 플랫폼으로 발전시킨다.



■ 정책 제언: 정상회의를 계기로 제도화

  •  정상회의 아젠다 반영: '한-중앙아 지방협력 증진에 관한 공동선언'(가칭)을 채택하여 계절 근로자 프로그램과 K-개발협력 모델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도출한다. 단순한 의례적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 사업과 예산이 뒷받침되는 실행 로드맵을 포함해야 한다.


  •  범정부 TF 구성: 외교부(정책 조정), 행정안전부 및 시도지사협의회(지방협력), 고용노동부(근로자 프로그램), 기획재정부(재정 지원)가 참여하는 '한-중앙아 지방협력 추진단'을 구성하여 부처 간 칸막이를 해소한다.


  •  민관 거버넌스 확립: 지방자치단체, 농협중앙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참여하는 '한-중앙아 지방협력 협의회'를 상설 기구로 설치하여 현장 중심의 실행력을 확보한다. 정부 주도가 아닌 민관 협력 모델로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한.중앙아 협력포럼의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는 KF의 적극적 역할이 기대된다.



■ 중앙아시아에서 완성되는 K-개발협력의 새로운 지평

 종합하면, 한-중앙아 지방협력은 단순한 지역 간 교류를 넘어 한국형 K-개발협력의 대표 모델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제다. 계절 근로자 순환 프로그램으로 농촌 인력난을 완화하고, K-개발협력 상생 모델로 지방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스마트시티 협력으로 미래지향적 연계를 확장한다.


 무엇보다 중앙아시아는 K-개발협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이고, 한국 지방정부는 이를 실행할 핵심 주체다. 발전 단계 반면교사, 상호 보완적 자원 구조, 지정학적 중립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곳은 중앙아시아가 유일하다.


 이는 강대국의 패권 경쟁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한국만의 접근법이다. 러시아의 안보 논리도, 중국의 대규모 투자 공세도, 미국의 가치 외교도 아닌, '현장의 실용적 상생'이야말로 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제시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다.


 따라서, 내년 처음으로 개최되는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 간 정상회의는 한국 지방의 미래와 K-개발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방이 국제협력의 주체로 나서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혁신적 모델을 통해, 한국은 '신 그레이트 게임'의 각축장에서 경쟁이 아닌 상생의 길을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이 함께 개척해 나갈 것이다. 



※ 본 칼럼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기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필자의 개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으며, KF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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