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의 '중앙아시아 전통의학 협력사업'을 돌아보며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채한 교수
1. 국제보건 국제협력 사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한의사로서 국립대학(부산대학교) 한의학과에서 기초학 교수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고 있으며, 오픈 마인드를 가진 전통의학 분야 국제교류 전문가이다. 의욕 넘치는 젊은 시기에 미국에서의 긴 박사 후 연구과정 생활로 외국인과의 생활도 익숙하고, 한의학과와 한방병원의 신설에 따른 국제교류를 개발하고 운영한 경험도 있으며, 교육 ODA에 대한 지식도 조금은 있었고, 이슬람 의학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것으로 충분했을까? 이 글의 독자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물론 아니었다. 무엇보다 국제협력은 당연히 외교의 영역이므로, 과거 능숙했던 보건복지부나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의 문법은 뒤로하고, 외교부의 문법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직접 실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현장 경험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이 글에서는 국제협력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된 차세대 젊은이들을 위해, 중앙아시아 사업을 진행하는 실무과정에서의 경험을 조금 일찍 시작한 선배로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2. 그래, 모든 건 사람이 전부다
첫째, 팀워크가 필수적이며,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진짜 전문가들이 하나의 팀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언어가 다른 이해당사자와의 소통, 한의학 교육과 진료, 국내외에서의 여러 행정적 처리 등 다양한 분야가 동시에 필요했는데, 현실적으로 내가 모두 동시에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단순히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넘어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의 양에 비해 시간도 체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게다가 중앙아시아에서의 프로젝트는 현지의 문화를 알려주고, 소통(언어)을 해결할 통역이 절대적이다. 지금껏 학문적인 영역이었기에 영어만 사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언어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의사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으면 서로 오해할 수밖에 없으니, 일의 맥락과 접점이 잘 유지되어야 한다. 특히 중앙아시아 5개국은 역사와 문화, 제도와 법률이 모두 생소했다. 현지를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적응해야만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국제교류와 한의학 교육의 전문가로서, 한의학 임상과 침구의학의 전문가, 사업운영과 전통약재 전문가와 하나의 팀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행운을 가졌다. 아울러 투르크멘이라는 이질적 문화에서 자란 현지 최고의 한국어 전문가도 함께할 수 있었다. 이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은 것은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해보면, 함께하는 동료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개인적 공간에 대한 배려, 그리고 지향점이 명확했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한다.
둘째, 국제협력 전문가의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 필요하다.
국내외 전통의학 분야에 대한 교육, 연구, 국제협력에 대한 지식이나 현장 경험은 그 누구보다도 많다고 자신한다. 무엇보다 국내외에서의 경험만 30여 년이다 보니, 어떠한 문제나 어려움에도 항상 해결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국제협력 분야에 있어서는 한마디로 신참내기다. 개인적인 조언과 간접적인 경험을 나누어 줄 훌륭한 어드바이저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들이 실패했던 그리고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냈던 바로 그 경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로젝트의 한계와 가능성을 명확히 알아야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자리를 빌려 KF 한-중앙아협력포럼사무국과 울산국제개발협력센터, 부산광역시글로벌도시재단, 그리고 양국 대사관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국제협력의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들이 막혀 있는 상황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동병상련이랄까, 같은 일을 겪고 있다는 공감과 격려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셋째, 남는 건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이다. 지금 이 일이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의 이해기관도 어느 순간 개편될 수 있고, 내 앞의 담당 공무원도 1~3년이면 무조건 바뀌며, 이해관계자도 어느 시점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를 전문가 네트워크는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어렵지만, 업데이트하고,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면 내게 남겨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프로젝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좋은 사람들(국내외 동료, 행정가, 이해관계자)인 것 같다. '좋은 사람과 하는 일은 힘들어 보여도 언젠가는 성공하지만, 반대로 여건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가끔 수원국에 무엇을 해줄 때, 건물이나 공장이라도 남아 있으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시는 ODA 제안을 접하게 된다. 과거 중앙아시아를 방문했을 때 크게 잘 갖추어 놓은 천연물 추출 공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운영기술 전문가가 없어서 오염된 제품은 내수에도 수출에도 사용할 수 없고, 비즈니스 전문가가 없으면 판매처도 투자자도 찾을 수 없었다.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다. 이역만리 수원국에 남겨야 할 것도 좋은 현지 사람이다. 하다못해 세계대전의 패전국들도 결국은 기술자들의 손과 경험이 살아남아 지금의 산업 선진국이 되지 않았을까?
3. 체계적 접근과 인샬라(Inshallah)
첫째, 무엇을 하더라도 체계적으로 진행하려면 탄탄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3년간의 중앙아시아 전통의학 협력사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기초자료가 없었다는 것과 체계적으로 진행해본 한의계의 경험도 없었다는 점이다. 항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과도할 만큼 미리 준비해서 가장 좋은 방향을 찾으려고 애써왔으나,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뭐 하나 해보려 해도 사전에 준비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겠나, 지하 터파기부터 옥상층까지 동시에 진행할 수밖에.
그래서 중앙아시아 전통의학 국제협력 사업에 있어, "한국형 국제보건의료 ODA 정책에서 한의약 역할방안 연구(대한한의사협회 지원, 2022)"라는 연구과제와 "국제보건에서 한의약 공적개발원조의 현재와 지속가능한 발전전략(대한한의학회지, 2024)"라는 논문을 통해서 한의학 ODA의 비전과 세부 전략을 세웠고, "우즈베키스탄 전통의학의 과거, 현재와 미래(대한한의학회지, 2025)"라는 논문으로 중앙아시아 전통의학의 역사와 제도가 검토되었으며, "한방산업 발전 경험을 활용한 중앙아시아 전통의약산업 육성방안 연구(KF 지원, 2024)"라는 정책과제로 한의학 ODA의 현지 허브기관이 될 '허준의학원'의 비전과 과제, 지속가능한 생태계 발전 전략까지 수립하였다. 사업 실무를 끌고 가면서 동시에 체계적 토대도 함께 만드는 과정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둘째, 중앙아시아의 인샬라와 대한민국의 진인사대천명.
인샬라는 ‘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무슬림 표현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서의 결과는 신의 손에 맡기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어르신들의 막연한 푸념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일을 모두 다하고, 이제는 하늘의 운명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수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국내에서 생기는 상황도,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공들여 준비한 현지 방문이 급작스러운 고위급 방문으로 보안상 입국이 거부되는 상황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열심히 신뢰와 열의를 보여왔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어쩔 수 없다. 이제 일이 풀리나 싶을 때 도와주던 사무관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더라도 내가 어찌할 방법은 없다. 게다가, 이제 일이 되려는 찰나에 국내 사업비가 뚝 끊기더라도 역시나 어쩔 수 없는 거다. 다른 방법이 없겠지, 나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셋째,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을 마음.
대한민국은 수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지난 70여 년간의 눈부신 전통의학 생태계 발전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이며, 수원국의 경제적 발전과 보건의료의 증진을 즉각적으로 이루어줄 적정기술도 이미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신북방정책이나 K-이니셔티브에서 살펴보아도 전통의학 협력사업은 외교, 문화, 보건, 산업이 융합된 한국형 보건외교 모델로, 국제보건의 미래 리더십을 견인할 최적의 자산이다.
2025년 7월 14일, 아시가바트(투르크메니스탄)와 인천(대한민국)을 잇는 직항편이 드디어 취항하면서 양국 간 외교, 문화, 사회, 경제 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투르크메니스탄 내각이 승인한 ‘한-투 전통의학 협력 5개년 계획’은 양국 전문가의 전통의학 워킹그룹 구성, 장단기 파견과 현장연수 및 원격교육, 교육과정과 임상 가이드라인의 교류, 전통약재에 대한 공동연구 및 발표, 협력기관의 설립과 이를 위한 한국어 교육까지 장단기 목표를 포괄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한국형 전통의학 협력모델인 ‘허준의학원’은 한국 침구의학의 단순 이식에서 시작해서 임상진료와 의학교육, 약재산업의 상호 보완적인 세 축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수원국의 지속가능한 전통의학 생태계와 이를 상징하는 중앙아시아 최고의 전통의학 전문기관을 지향한다.
지난 3년간 전형적인 ODA 문법을 따라왔기에,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쇼케이스로 한의학의 세계화와 한류 확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5년 후 오늘을 되돌아보며, 꺾이지 않고 끝까지 버텼던 날들이 옳았다고 자부하기를 기대해본다.
※ 본 칼럼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기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필자의 개인 의견을 포함하고 있으며, KF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