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앙아시아 개발협력, 변화가 필요하다
이상준(국민대)
우리나라는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면서 사회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2010년 OECD 국제개발위원회(DAC) 회원국이 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원국에서 공여국이 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흔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제사회에 존경받는 국가는 단지 선진국이나 강대국이라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 우리나라의 사회경제 발전을 완성하는 것은 세계의 다른 국가와 공존하면서 많은 개도국의 발전을 도우며 또 스스로 사회경제발전을 계속하는 국가가 될 경우에 가능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가 원조 수원국에서 순수 원조 공여국으로 지위를 바꾸게 된 것은 1991년 무상원조 전담기관으로서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중앙아시아가 신생 독립국으로서 국제무대에 등장한 것도 소련말기였던 1991년 이었다.
우리나라와 중앙아시아 국가 간 개발협력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첫째, 사회경제발전에서 얻어진 선진국들의 법제도와 조직 문화 등은 이미 선진국의 제도에 내재화되었으며 발전의 중요한 경험과 현장에서의 지식은 이미 박제되어 버리고 사라져 버렸다. 반면 우리나라의 사회경제발전의 경험은 아직 현 세대의 일로서 많은 제도적 유산과 경험들을 개도국에 남겨줄 수 있는 자산으로 가지고 있다.
둘째, 저발전 체제전환 국가와의 개발협력은 향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남북협력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중앙아시아 지역을 살아 본 이들은 간혹 한국 TV를 통해 비쳐지는 평양이나 북한의 거리 풍경이 낯설지 않게 느끼는 것은 국가 건설 초기 사회주의 소련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래서 고려인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는 지역이라는 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수 있다.
우리나라의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개발협력을 변화하고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 발전의 초기 조건을 여느 개도국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았다. 소련 해체 이후 갑작스럽게 맞이한 독립으로 건국과 체제전환을 동시에 진행해야만 했었다. 러시아인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중앙아시아 현지인들이 빠르게 채웠지만 국가 운영에 필요한 행정, 관리, 기술 능력은 바로 보충할 수 없었다. 따라서 개발협력의 수요는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개발협력을 추진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보여주었다.
첫째,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다원주의 시민사회로의 체제전환을 진행하였지만 체제전환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다. 체제전환 개혁을 진행하면서 대상, 우선순서, 방법 등에 대한 준거가 될 기준이 없었다. 국가의 기능을 정립하는 동시에 경제적 어려움도 해결해야 하였기에 이러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동유럽의 사례와 비교하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동유럽은 EU가입이라는 목표를 기준으로 삼아 개혁의 지향점을 찾았다. 그래서 EU는 동유럽 국가의 체제전환 개혁을 돕기 위한 PHARE(Poland and Hungary: Assistance for Restructuring their Economies) 프로그램을 잘 운영할 수 있었다.PHARE는 당초 폴란드와 헝가리를 대상으로 농업, 산업, 투자, 에너지, 교육훈련, 환경보호, 무역과 서비스와 관련된 사적 부문(private sector) 지원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게 됨에 따라 이를 동유럽 체제전환국가 전체로 확대하였다.
EU는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CIS 권역 국가에서도 TACIS(Technical Assistance to the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협력을 진행하였다.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즈 국가를 위한 기술(techinical), 즉 국가 및 제도 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능력을 지원하는 TACIS 프로그램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이후 일반적인 개발협력 프로그램인 유럽원조(Europe Aid) 프로그램에 편입되었다. 이와 같은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목표의 존재에 있었다.
둘째, 개발협력은 장소(locus)가 아닌 지역(region)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맥락에 맞추어 개발협력 프로그램이 구체화되지 않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 적용된 방식을 원형으로 하여 아주 미세한 조정을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에 적용되었다. 사회의 작동원리가 개인이 중심이 되는 국가와는 다르게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유목문화, 종교적 가치 등으로 씨족이나 집단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며 의사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사는데 필요한 물적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개발협력에 의하여 만들어진 다양한 프로젝트들의 결과물을 가지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를 운영하는 것은 중앙아시아인들이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 국가가 국민을 대상하는 추진하는 전자정부 프로젝트는 국가의 효율적인 사회통제를 우선적인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국민 편의성과 국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전자정부를 추진하는 경우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국제사회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관점을 수용하면서 궁극적으로 국민 편의성과 참여가 가능할 수 있도록 계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셋째, 내륙국가라는 점에서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과의 개발협력은 양자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특정 개발협력 사안에 따라 다자적인 접근도 중요하다. 국제교통물류회랑, 수자원, 전력망 등 네트워크형 개발협력 프로젝트는 양자차원의 해결로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제사회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다자차원의 개발협력을 논의하기 위하여 중앙아시아 5개국과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 몽골, 아프가니스탄 등 이 지역의 내륙국가과 세계은행, 아시아 개발은행, 이슬람개발은행, 유럽개발재건은행 등이 참여하는 중앙아시아 개발협력기구(CAREC: Central Asian Regional Economic Cooperation)을 조직하였다. 이 기구의 목적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개발협력 사업은 특정국가와 잘 진행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창설되었다. CAREC이 구성되기 이전에 다자차원의 개발협력 논의는 거의 없었다. 물론 CAREC이 창립되었다고 다자차원의 개발협력이 모두 매끄럽게 잘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러한 기구가 존재하였기에 오늘날 우리는 신실크로드의 핵심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를 가로지르는 CAREC 교통물류회랑을 지도상에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앙아시아 개발협력은 위의 경험을 통해 얻은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발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다행이도 우리나라는 중앙아시아 5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한중앙아 포럼을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 5개국으로부터 각각 한명씩 사무국으로 초청하여 같이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소통방식은 CAREC의 연결관(Contact Point) 제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CAREC의 제도는 각국별 연결관들이 자국에 근무하면서 필요할 때 만나서 개발협력 의제를 논의하고 이를 상부에 각각 보고하여 다시 의견을 조정해야 하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야 된다. 반면 중앙아 5개국 주재관이 상시 소통하면서 협력을 논의하는 한중앙아 포럼은 더욱 효율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거 수자원 개발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를 논의하지 못하는데 이 지역에서 다자간 개발협력을 논의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며 불만 섞인 질문을 세계은행 중앙아시아 책임자가 던진 적이 있다. 그만큼 다자간 이슈를 의제로 다루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중앙아 포럼 사무국의 이러한 기능이 존재하였기에 수자원 문제를 한중앙아 포럼에서 논의할 수 있었다.
그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우리나라 개발협력이 양자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다자 간 프로젝트 발굴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 관세 행정시스템 등 중앙아시아 지역이 교통물류회랑의 중심이 되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중앙아 4개국은 섬유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개도국이 산업육성을 위해 처음 시도하는 산업육성은 주로 섬유산업이라는 점에서 각국이 이러한 발전 전략을 선택한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경제에서 국제분업은 거의 필수적이다. 물론 각국이 경쟁하면서 더 생산성 높은 섬유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역내 분업구도를 고려하면서 역내 섬유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요구된다. 특히 코로나19로의 세계 대유행으로 경쟁력 있는 역내 분업구조는 과거 글로벌 분업구조를 대신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개발협력 사업에는 어느 정도 원형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특정 지역에 투사할 경우 지역적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을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추진되는 개발협력은 지역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 중앙아시아는 내륙국가라는 한계점과 지중 공간이라는 장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한국과 개발협력하면 이 지역의 단점은 줄어들고 장점은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범용성을 이유로 개발협력 사업의 원형을 미세하게 조정하여 협력을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